투자자들에게 원금손실 없이 고수익을 준다며 상품을 판매했던 P2P 금융 업체들이 연체율 급등과 대규모 원금손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P2P 금융 업체들이 외형 성장에 눈이 멀어 부동산 PF 및 동산 담보 등에 무리하게 뛰어든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금리 대출시장을 개척할 혁신금융 서비스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제2의 라임 사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45개 회원사의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말 현재 8.43%로 집계됐다. 2018년 말 5.78% 수준이던 회원사들의 연체율은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P2P 업체는 총 239개인데 협회 회원사가 아닌 상당수 업체의 연체율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연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P2P 금융 업체 경영진 출신인 A씨는 “연체가 뻔히 예상되는 상품을 리파이낸싱해 돌려막는 등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각종 꼼수가 넘친다”며 “실질 연체율은 공개된 숫자보다 훨씬 높다”고 밝혔다.
실제 서울경제가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확보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P2P 금융 상위 20개 업체의 연체율은 2019년 6월 말 현재 13.92%였다. P2P 금융 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업체들의 연체율이 평균 연체율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다.
업계 1위인 테라펀딩의 연체율은 지난해 6월 5.97%에서 같은 해 12월 12.97%까지 치솟았다. 또 다른 상위권 업체인 어니스트펀드 역시 같은 기간 1.37%에서 5.87%로 올랐다.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원금손실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8퍼센트는 최근 한달 동안 24개의 채권을 매각하면서 매각 전보다 수익률이 약 1.6% 하락했다. 팝펀딩은 지난해 말 10% 미만에 불과했던 연체율이 12일 현재 45.23%로 치솟은 데 이어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돼 업계에 충격을 줬다. A씨는 “업계 상위권 업체라도 넉 달 이상 장기 연체된 상품의 비중이 70~80%에 달한다”며 “대출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원금손실이 가져다줄 충격을 피하기 위해 하염없이 연체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고 밝혔다.
85% 분양 완료됐다던 공장 부지, 주소지엔 야산만 덩그라니
■경주 ‘분양 현장’ 가보니
담보 상품-실제 분양 필지 달라
허위정보 기재·원금손실 상품도
“사실검증·현장실사 한번도 안해”
부실한 대출심사 연체율 부채질
P사가 지난 2018년 분양을 추진했던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의 필지 중 한 곳이 야산의 형태로 남아 있다. /경주=박진용기자
“분양률 85%라고요? 기존 입주업체들도 1~2년 전부터 공장 부지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안 팔려서 난리예요.” (경주산업단지 인근 부동산 개발업체 A 대표)
지난주 말 찾은 경주의 한 일반산업단지. 국내 대표 개인간거래(P2P) 금융 업체 중 하나인 P사가 분양을 진행 중인 필지를 찾아갔지만 사실상 야산에 가까운 상태였다. P사는 해당 사업지를 대기업 협력사가 밀집한 지역이라며 ‘18개월간 85.6% 분양률 기록’ ‘13.6% 분양 도달 시 금융권 리파이낸싱 가능’ 등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해당 필지는 할인분양을 진행했음에도 분양률 10%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기록했다. 최근 14차 공매까지 진행했지만 현재까지도 유찰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급증하는 P2P 금융 연체율은 이처럼 부실한 대출심사 등 업체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업계 상위권 P2P 금융 업체의 대출상품을 조사한 결과 입지정보와 개발 진행상황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출시된 상품이 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에서 금지하고 있는 담보 부풀리기, 불완전판매 등의 사례가 드러나면서 오는 8월 제도권 진입을 앞두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허술한 대출심사 및 투자자 모집=경주산업단지 역시 대출심사 및 투자자 모집 과정이 허술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P사가 지난 2018년 투자자들에게 선보인 경주산업단지의 분양예정지역과 실제 분양 대상 필지는 주소가 달랐다. P사 관계자는 “분양 대상 토지는 구어리 1404 등 6개 필지였다”며 “다자간 약정서에 따라 ‘89-1 일원’으로 정의하고 대표 주소인 89-1을 올리다 보니 착오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한 경매 전문가는 “다자간 약정서를 쓰는 경우는 사실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다. 오히려 분양하려는 필지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의심된다”며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현지 답사만 했어도 발생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불완전판매”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상품 역시 부실심사 논란에 휩싸여 있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2017년 7월에 출시한 ‘안성, 벽제 토지 상품’은 담보물인 토지가 공장 설립 인허가 단계 막바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본지가 확보한 수원지방법원에서 의뢰한 감정평가서에 따르면 이 토지는 2005년 10월 공장설립승인을 받았고 2017년 7월 공장 설립 승인이 취소됐다. 담보물인 토지개발과 관련해 사실상 허위정보를 기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P사 관계자는 “건축허가 신청이 실패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공지하고 투자금을 모집했다”며 “본 건의 두 담보물 중 한 건을 매각해 현재까지 59%의 원금을 회수했으며 잔여 담보물 매각이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채권 선순위 바꾸고 추가 투자자 모집=업계 상위 T사 역시 최근 대출상품(태안 다세대주택 및 파주 연립주택)을 원금 손실 처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상품은 투자자로부터 1순위 조건으로 약 48억원을 모집했다. 사업 진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새마을금고와 대환대출을 진행해 약 37억원(78%)을 우선 상환했다. 이 과정에서 잔여 채권(22%)이 2순위 수익권(새마을금고 1순위)으로 전환됐는데 별다른 공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채권 순위가 후순위로 밀리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진다. 이후 10억원 수준이던 잔여 채권이 약 6,100만원에 매각되면서 1순위 투자자들은 약 10억원의 원금 손실을 입게 됐다. 더욱 큰 문제는 같은 상품에 대해 2순위로 투자자를 재모집(리파이낸싱)했다는 점이다.
한 투자자는 “해당 상품을 2순위 조건으로 리파이낸싱을 한 뒤 3개월 만에 바로 연체가 일어났다. 사실상 연체가 될 것을 미리 인지하고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의심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2순위로 들어온 투자자들은 원금 전액 손실을 당했다. 반면 T사는 홈페이지상 채권 현황 업데이트를 통해 공지했고 연체될 줄 몰랐다며 맞서고 있다.
또 다른 업계 상위 업체 H사 역시 최근 부실심사 논란에 빠졌다. 지난해 11월까지 투자금을 모집했던 한 중소기업 매출채권 상품의 경우 지난달 해당 업체가 갑자기 폐업을 선언하면서 투자자들은 절반에 가까운 원금 손실을 입게 됐다. 투자자들은 두세 달 후에 폐업할 것도 현지실사를 통해 확인하지 못한 것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특히 폐업 후 2주가 넘도록 H사가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고 재고자산 처분을 통해 상환도 어렵다고 밝혀 투자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채일권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글로벌인프라연구소 투자법인대표)는 “P2P 회사가 제 2금융권 대환대출로는 2순위 수익자의 상환이 어려움을 것을 알면서도 2순위 수익자에게 상품을 팔고, 해당 채권을 부실채권 정리하는 것은 투자사로서 모럴 해저드에 가까운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무리한 PF투자가 화근... ‘사채수준 위험상품’ 투자도 부실키워
■P2P 연체율 급등 이유는
부동산 PF 대출이 전체의 66%
에쿼티·브리지·ABL 투자 등은
이자율 100% 넘어 사채 수준
상품 위험도 제대로 인지 못해
투자자 원금 손실 가능성 높아
개인간거래(P2P) 금융은 돈이 필요한 사람(대출자)과 여윳돈을 굴리려는 사람(투자자)을 연결해주는 금융업이다. 지난 3~4년간 핀테크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말 기준 연계대부업자로 등록한 업체 수는 27곳, 누적대출액은 373억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말 기준 업체 수는 239곳, 누적대출액 8조6,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개인 신용대출 비중이 73%로 높지만 대출잔액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대출이 전체의 66%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P2P 대출 연체율의 급증은 이처럼 부동산 PF 등 각종 부동산담보대출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선두주자인 어니스트펀드와 피플펀드가 대표적인 예다. 어니스트펀드는 부동산 PF 대출에서 약 3,000억원의 누적대출을 진행해 현재까지 연체율이 0.51%로 선전했다. 하지만 자산유동화(ABL) 등이 속한 부동산담보(기타) 분야에서는 현재까지 약 1,000억원의 누적대출을 기록, 연체율이 41%에 달한다. 피플펀드 역시 부동산 PF 분야에서 1,630억원의 누적대출을 진행해 55.77%의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담보(기타) 분야에서는 450억원의 누적대출을 기록해 현재 82.64%의 연체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공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PF 대출 중에서도 초고위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에쿼티투자·브리지투자·ABL 등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이 상품들은 차주에게 받는 수수료가 법정 최고이자율인 24%를 넘어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위험 수준을 인지한 투자자는 드물다.
에쿼티는 전체 프로젝트 사업비 중 대출자의 자기자본 비율을 뜻하며 사업 초기 토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얻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대출자의 에쿼티 비율이 높을수록 향후 분양에 성공하지 못해 할인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투자자의 돈이 안정적으로 회수될 수 있다. 에쿼티투자는 이처럼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마땅히 갖춰야 할 자기자본도 부족한 차주에게 빌려주는 만큼 위험이 높다.
한 부동산개발 업체 임원은 “에쿼티투자는 위험도로 따지면 ‘끝판왕’으로 고작 몇 달만 빌려줘도 받는 이자율이 100%를 넘는다. 사실상 사채의 영역으로, 대출이 아니라 초고위험 투자라고 부르는 게 맞다”며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20% 가까이 되다 보니 눈독을 들이지만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차주로부터 100% 넘는 수익률을 거둔다는 것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성금 지급 등 공사 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분양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없이는 결코 뛰어들면 안 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상당수의 P2P 금융 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브리지투자와 ABL 상품 역시 위험이 상당하다. P2P 금융 업체들이 취급하는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는 분양대금 ABL이다. 시행사가 미래에 지급받을 분양대금을 담보로 대출을 진행하는 구조다.
ABL 상품에 특화된 업체에 재직했던 A씨는 “시행계획서상 금액보다 실제 시공 시행금액이 훨씬 많이 드는 게 다반사였다. 시행사 및 시공사들이 보통 여러 건의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투자받은 돈을 다른 공사장에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시공사들의 신용도가 C등급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신생 P2P 금융 업체 입장에서 양질의 업체를 사전에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탐사기획팀=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