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빌딩 앞 모습.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딴지를 걸면서 ‘메가 조선소’ 탄생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과 세계무역기구(WTO) 공방 끝에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지만 기업결합심사에서 몽니를 부릴 경우 합병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합병 좌초될 일 없을 것”=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달 31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에 대한 정부와 산업은행의 지원이 WTO 보조금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산은은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 주식을 넘기는 대신 현대중공업 조선해양 부문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신주를 받기로 했는데, 산은이 기존 지분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주식을 받기로 했다는 게 일본의 논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민간 기업에 부당한 보조금을 줬다는 것이다.
당국은 이번 제소로 양사 합병이 좌초될 일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WTO의 분쟁 해결 절차는 2심제인데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은 연내 모든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합병이 중도에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특히 1심 판결에 불복한 쪽이 상소절차를 밟을 경우 최종 판결은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다. 최종심인 상소기구는 상소위원 임명이 지연되고 있는데, 사건을 검토할 재판부가 없는 만큼 상소 시 양사 합병 문제는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
◇패소하더라도 합병 자체 무산 아냐=한국 정부가 패소하더라도 합병 자체가 무산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산은이 현대중공업에 주식을 싸게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만에 하나 한국이 패소하더라도 현대중공업이 산은에 일정 자금을 추가로 지급하면 된다”고 말했다.
남은 관건은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 여부다. 현대중공업은 한국을 포함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일본·중국·유럽연합·싱가포르 등 총 5곳의 당국(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에서 합병 심사를 받고 있는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그 시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합병이 어렵게 된다. 이번 제소를 두고 일본이 한국 조선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해 각국 심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日 심사당국 입장이 관건=다만 일본 외 다른 국가들이 심사 과정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결합심사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가격인상 △물량 축소 △담합 등 신생 기업이 시장지배력 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합병 절차에 관한 문제는 기업결합심사의 주요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은 변수는 일본 측 심사당국인 공정취인위원회의 입장이다. 양국관계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WTO 제소를 결정한 곳은 일본 국토교통성으로 기업결합 심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으나 업계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은 건인 만큼 공정취인위원회에서 딴지를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