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검경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경찰은 초동수사 부실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고, 검찰은 항소심 준비에 대한 부담이 늘었다.
20일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에게 “전 남편을 계획 살해한 혐의는 인정되지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붓아들의 사망 원인이 코와입 폐쇄성 질식사로 추정되나, 피해자가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처방받은 감기약의 부작용이 수면 유도 효과임을 고려할 때 아버지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간접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법칙에 부합돼야 한다”면서 “의심과 사실이 병존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경 충북 청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5)의 얼굴이 침대에 파묻히게 한 뒤, 뒤통수 부위를 10분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청주 경찰도 A군의 친부이자 고유정의 현 남편인 B(38)씨의 모발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점과 A군이 숨진 날 새벽 고유정이 깨어있었던 정황 등을 토대로 그를 A군 살해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경찰이 찾아낸 건 정황 증거뿐이었다. 고유정이 사건 당일 깨어 있었다는 휴대전화 흔적도 “사건 당일 남편과 아들이 자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으며 아침에 깨어보니 아들이 숨져 있었다”는 고유정의 진술과 배치되는 듯했지만, 살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증거는 되지 못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역시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고유정의 1심 무죄 선고로 장기간 수사하면서 스모킹건(결정적인 증거)을 찾지 못한 검경은 부실 수사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