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슈퍼버그] 75년전 플레밍의 경고…'팬데믹'은 계속된다

■맷 매카시 지음, 흐름출판 펴냄
항생제 '페니실린' 등장 후 오남용
박테리아, 진화 거듭하며 내성 생겨
'슈퍼버그' 12종, 癌보다 더 큰 위협
2050년 3초당 1명 목숨 앗을수도
의학계, 유전자가위·바이러스 활용
감염병에 한발 앞선 연구로 맞서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20세기 의학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당시 인류는 병원균을 정복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1945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플레밍의 수상 소감은 장밋밫으로 보였던 인류의 미래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당시 그는 “페니실린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내성균이 나타날 것”이라고 묵직한 경고를 날렸다. 과연 그의 예언대로 박테리아는 변이를 거듭해 인류가 사용하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며 끈임없이 진화해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인류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적, ‘슈퍼버그’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슈퍼버그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말한다. 슈퍼버그가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항생제로 맞서야 한다. 내성을 가진 새로운 박데리아에 감염되면 이전의 항생제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슈퍼버그는 코로나19보다 인간에게 훨씬 더 치명적이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과 영국 재무부 차관을 지낸 경제학자 짐 오닐 영국 맨체스터대학 교수는 ‘박테리아의 향균제 내성에 대한 검토’ 연구 후 슈퍼버그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사망자가 3초당 1명씩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17년 아시네토박터균, 장내세균속균종, 황색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 헬리코박터균 등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버그 12종을 발표하면서 인류에게 암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이들 슈퍼버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70만명에 달하고, 새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사망자가 연간 1,0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가정이 현실화될 경우 피해액만 10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도 슈퍼버그 감염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팀에 따르면 지난해 슈퍼버그 감염으로 국내에서 패혈증, 폐렴 등에 걸린 환자는 9,000명에 달하며 이 중 40%인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와 비교해도 전염성이나 치사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까지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박테리아가 있더라도 치료제가 없었고, 변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버그는 19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바로 상업적 농업의 확산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의 생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가축에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투여해왔고, 박테리아는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화했다. 그 결과 슈퍼버그는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책은 경고한다.

문제는 그에 따른 항생제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약사 입장에서 항생제 개발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품목이다. 감염병은 주로 가난한 나라나 부자나라의 빈곤층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감염자들은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고, 치료제로 개발된 항생제를 구입할 여력이 없다. 항생제를 개발해도 까다로운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신약은 시판 후에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법적 문제에 휘말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힝생제에 세균이 쉽게 내성을 만들어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기 때문에 효과가 장기적이지도 않다.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의사인 저자 맷 매카시는 책에서 항생제 임상시험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심각성을 전달하고 있다. 희소 감염병을 앓고 있는 10대 소녀와 9.11 테러 당시 현장을 지켰던 뉴욕의 소방관,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여성, 의료진의 처방 실수로 인해 마약중독자가 된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슈퍼버그 감염자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다. 이들의 사례는 슈퍼버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실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또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위협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고 슈퍼버그 앞에서 인류의 미래가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가 참여한 임상팀이 개발해 상용화한 ‘달바반신’ 등 박테리아를 괴멸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가 개발되고 있고,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해 박테리아 내에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책은 인류가 어떻게 감염병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됐는지부터 감염병의 실태, 이에 맞선 의학계의 노력과 기술의 발전 등을 담고 있다.

“슈퍼버그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앞으로 훨씬 많은 슈퍼버그를 보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조용히 경이로운 새 공격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무서운 상대가 그것들과 맞서고 있다. 우리는 한발 먼저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1만8,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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