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삶의 터전이다. 대중교통과 도로 인프라가 미비하고 자동차 가격이 비싸다 보니 가장 효율적인 오토바이를 중심으로 일상이 돌아간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아버지 뒤에 앉아 문제집을 푸는 학생, 짧은 치마를 입고 오토바이를 몰아 데이트에 가는 여성, 몸집의 5배도 넘는 짐을 오토바이에 묶어 배달하는 상인을 보면 베트남이 왜 ‘오토바이 천국’인지 알게 된다.
이런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중고 오토바이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동남아시아의 ‘넥스트 그랩’을 꿈꾸는 한국인이 있다. 김우석(36·사진) 오케이쎄(OKXE) 대표는 매년 800만대의 오토바이가 사고 팔리는데도 여전히 재래시장 특유의 ‘깜깜이’ 거래에 머물러 있는 베트남 중고 오토바이 시장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안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앞서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창업해본 경험에 더해 20년가량 오토바이를 탄 오토바이 마니아로서의 자신감도 있었다.
호객과 흥정은 필수, 도난·고장 오토바이를 파는 사기 거래도 잦은 베트남 시장에서 오케이쎄는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9월 공식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 뒤 5개월여 만에 4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고 두 달째에 이미 월 거래액 10억원을 넘어섰다. 현재 2% 안팎인 현지 시장 점유율은 앱 출시 3년째인 내년이면 20%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성직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던 김 대표는 “기도하는 것 외에도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는 소금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오케이쎄는 시장의 낮은 신뢰와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목표에 가깝다”며 “방황도 고민도 많았지만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쪽배를 타고 불확실성의 파도를 타고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김우석 오케이쎄(OKXE) 대표. /사진제공=오케이쎄
김 대표가 베트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6년이다. 2013년 그가 친형인 김우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연구교수·조영욱 대표이사와 공동창업한 화장품원료 기업 바이오스탠다드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마무리한 직후였다. 바이오스탠다드를 창업하고 30대가 되기 전까지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김 대표는 경영으로 길을 잡은 다음부터 쉼 없이 달렸다.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경영 안정과 투자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루를 1년처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휴식이 절실했다. 그때 떠오른 곳이 납품 기회를 얻어 시장 조사차 갔던 베트남이었다. 김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양성 과정을 밟으며 베트남 하노이에 첫 둥지를 틀었다. 그는 “처음에는 쉬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 베트남이었지만 GYBM의 군대식 언어 연수 덕분에 쉬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베트남어를 배웠다”며 웃었다.
‘오토바이 마니아’를 자칭하는 김 대표에게 베트남은 매력적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오토바이에 빠졌던 그는 16세가 되자마자 2종 원동기장치면허를 땄고 19세에는 대형오토바이 면허와 자동차 정비 자격증까지 갖췄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오토바이 투어링을 즐기는 게 취미였던 그에게 오토바이 천국 베트남은 제2의 고향이 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현지의 뒤떨어진 오토바이 거래 시스템이었다. 스마트폰 이용률이 72%에 달하는데도 대부분의 중고 오토바이는 여전히 재래식 오프라인 시장에서 옛날 방식으로 거래됐다. 반말로 오가는 호객행위는 기본이고 부르는 가격은 묻는 손님마다 달라졌다. 품질 보증서는커녕 계약서도 없어 ‘오늘 산 오토바이가 내일 멈추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20년 가까이 오토바이를 정비하고 거래해온 그의 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도망쳐 나왔던 김 대표는 다음날부터 매일 오토바이 시장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오토바이를 살펴보고 가격을 물어보며 믿을 만한 상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오토바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애를 먹는 소비자와 좋은 물건을 제 가격에 팔고 싶어도 불신에 막힌 판매자 사이에서 그는 분명한 수요를 읽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사회의 불필요한 갈등과 불편을 줄이고 싶었다. 베트남에 온 지 1년 만에 내디딘 오케이쎄 프로젝트의 첫발이었다. “1년 동안 3,000개의 가게를 방문했어요. 처음에는 외국인이 자꾸 와서 알짱거리니까 이상하게 보던 상인들도 나중에는 차를 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죠. 좋은 오토바이를 잘 팔고 싶어하는 상인들은 오케이쎄의 취지에 공감하고 파트너로 기꺼이 참여해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파트너숍이 500개. 호찌민의 파트너숍 중에는 오케이쎄에 아들을 파견한 곳도 있다. “선진 시스템을 배워오라”는 특명을 안겨서다.
김우석 오케이쎄(OKXE) 대표가 지난달 15일 베트남 호찌민 신한퓨처스랩 베트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빈난새기자
스타트업 두 개가 연달아 순항 중인 김 대표지만 처음부터 창업이 꿈은 아니었다. 천주교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는 수도사를 꿈꿨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밤낮없이 오토바이를 몰던 10대 때도 본질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그렇게 찾은 첫 퍼즐이 신학이었지만 성공회대 신학과를 다니면서도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부전공으로 교육학을 하면서 5년 동안 대안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도 진로 고민을 키웠다. 가정 형편의 어려움과 사회 시스템 미비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가 나쁜 길로 몰리는 아이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기도해줄게’ ‘희망을 갖자’는 말이 지금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그때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고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어차피 신이 교회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나가 제가 직접 잘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비즈니스도 단순히 돈을 벌어 나중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선순환을 일으키는 시스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소림사의 중흥을 이끈 스융신 주지스님의 이야기도 그가 경영의 길에 도전하는 데 또 다른 동기가 됐다. 지금은 중국 무술의 대명사가 된 소림사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은 이연걸 주연의 영화 ‘소림사’다. 198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죽의 장막에 가려 있던 소림사를 호쾌한 쿵후 액션과 함께 다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림사의 이름을 파는 무술 도장과 상점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정작 당시 소림사는 10여명 남짓의 스님이 무너져가는 사찰에서 끼니를 걱정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상황을 바꿔놓은 것은 1987년 소림사의 최연소 주지가 된 스융신이다. 미국에서 MBA를 취득한 첫 승려인 그는 회사를 차려 소림사를 지적재산권으로 등록했다. 무술학원·영화·식품사업 등으로 소림사가 벌어들이는 매출은 연 1,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당연지사다. 고사해가던 소림사를 부흥시켰다는 평가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왔지만 스융신은 “시대에 뒤처진 수행법은 버리고 소림사의 문화로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줘야 한다”며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김 대표는 “그를 보며 세상이 정말 재미있고 넓고 할 게 많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케이쎄로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으면서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팁스 프로그램 대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얻었다. 그를 보고 베트남 진출을 꿈꾸며 조언을 구하는 청년들도 많다. 김 대표는 “아직 이룬 것이 너무 없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살아오면서 쉽게 결정된 것도 없었고 상상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순간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오케이쎄 창업의 토대가 된 것 중 하나는 제가 오토바이를 정말 좋아했다는 점인데 이것도 어릴 때는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어요. 사고를 당한 적도 있고 친구를 잃은 경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삶의 부정적인 경험들이었는데 결국 그런 것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더군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은 얼른 자격증을 따고 좋은 직장을 찾고 안정적인 성과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빨리 완벽하게 자리 잡는 사람은 없어요. 불확실성이라는 파도를 관리하고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파도를 타면서 함께 출렁이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즐길 수 있으면 합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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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서울 △2012년 성공회대 신학과 △2016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석사 △2013년 ㈜바이오스탠다드 창업 및 COO 역임 △2016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양성 베트남지역 과정 △2017년 OKXE 프로젝트 시작 △2018년 OKXE 베타서비스 론칭 △2019년 OKXE 공식 애플리케이션 론칭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 △2019년 팁스(TIPS) 프로그램 대상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