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산림청장
브라질 아마존, 미국 캘리포니아, 인도네시아, 호주. 모두 지난해 이후 큰 산불이 발생한 국가들이다. 열대우림은 산불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점점 건조해지는 건기에 대형 산불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폭염·폭우 등 이상 조짐이 역력하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 위기’ 시대인 것이다.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에서 “전 세계 토지에서 농업, 산림 훼손 등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온실가스의 23%”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호주처럼 몇 달간 산불이 이어지면 우리나라 1년 치 온실가스 발생량만큼이 한 번에 뿜어져 나오게 된다.
사실 산림은 잘 보전만 되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순 흡수원 기능을 한다. 의외로 우리나라처럼 산림을 순 흡수원으로써 잘 관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아마존 산불은 브라질 인접 국가들, 인도네시아 산불은 주변국인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드는 연무현상을 야기한 바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재해는 국경을 넘나들기에 인접 국가들 간의 협업이 더욱 중요하다. 자연생태계는 국경과 상관없이 서로 연결돼 있고 접경지 양쪽의 주민들 역시 상생이 절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화산림이니셔티브(Peace Forest Initiative·PFI)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산림청이 외교부와 함께 지난해 9월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제14차 당사국 총회를 통해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PFI는 분쟁 우려가 있는 접경 국가 간의 공동 산림협력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평화를 증진하는 정책이다. 갈등은 토지 황폐화, 식량 부족, 자연재해의 악순환을 발생시킨다. PFI는 자발적 산림조성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소통과 신뢰, 평화를 뿌리내리게 한다.
산림은 크게 세 가지 장점을 갖는다. 첫째로 숲은 비정치적이다. 나무는 땅에 뿌리내리기에 그 편익을 전용할 수도 없다. 둘째로 나무를 함께 심는다는 것은 다음 세대, 미래의 꿈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셋째로 산림을 복원하면 인접 지역에까지 폭넓은 공익적 가치를 낳게 된다. PFI 청사진이 처음 공개됐을 때 폭넓은 국가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다.
최근에 첫 PFI 시범사업 논의를 위해 에티오피아에 방문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 부대를 파병해준 나라로 최근에는 접경 국가인 에리트레아와의 분쟁을 종식시킨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동시에 40억 그루 나무심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평화를 가꾼다는 것은 나무를 심어 기르는 것과 같다”며 나무심기의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평화산림이니셔티브’와 동일한 문제의식이다.
PFI를 필요로 하는 지역은 세계 곳곳에 너무 많아 PFI 사업 선정과 관련한 문의가 산림청에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PFI가 가장 절실한 곳은 아마도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일 것이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비무장지대(DMZ)의 국제평화지대화’를 제안했다. PFI는 이것을 실현할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아름드리나무, 그 희망의 씨앗을 보듬으며 곧 평화의 나무를 이 땅에 심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