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탈원전을 고수하더라도 최소한 오는 2080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가 계속 쌓여간다”며 “이에 대한 처분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요즘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는 경북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조만간 포화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대로라면 이곳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시기는 오는 2021년 11월이며 증설기간이 통상 19개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 4월에는 증설에 들어가야 월성원전의 정상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최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관계자가 “월성 3호기 정비일정이 길어지면서 4개월 정도 여유가 생겼다”고 밝혔지만 그 말이 맞더라도 8월에는 착공해야 한다. 일정이 왜 이렇게 촉박해졌을까. 김경수 신임 방사성폐기물학회장(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전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오해 탓에 지역사회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보니 차질이 빚어졌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임시저장시설의 증설을 승인한 만큼 하루속히 건설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학회장은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 증설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는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장 건설인데 늦어도 2030년까지 부지 선정을 포함해 모든 문제가 해결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는 데도 19년이 걸렸다”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만들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방사성폐기물의 일반적인 처리과정은 어떻게 되나.
△방사성폐기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전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로, 예를 들면 원전에서 쓰는 장갑·신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경주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처분하고 있어 아직 문제가 없다. 다른 하나는 사용후핵연료로 뜨겁고 방사능도 강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사용후핵연료를 땅 깊은 곳에 묻기로 법률적인 결정을 하면 그때부터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신분이 바뀐다. 이것을 처분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처분 결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없고 사용후핵연료만 있다. 사용후핵연료가 나오면 우선 습식저장시설에 10년 정도 넣어둔 다음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40~60년 저장한다. 그다음에는 사용후핵연료에 남아 있는 유효성분을 추출해내는 재처리를 하거나 땅 밑에 묻는 처분을 해야 한다.
-월성원전은 어떤 시설이 포화에 이른다는 건가.
△건식저장시설의 일종인 맥스터가 2021년 11월이면 포화에 이른다.
-맥스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재활용하는 측면도 있고 맥스터 포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재처리를 하면 유용한 핵연료를 뽑아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는 플루토늄 추출 없는 재처리를 연구 중이지만 이 역시 미국의 허가 없이는 할 수 없다.
-원전은 다른 곳에도 많이 있다. 월성원전의 맥스터만 유독 빨리 포화에 이르는 이유가 뭔가.
△월성원전은 중수로 발전 방식으로 경수로 방식인 다른 원전에 비해 핵연료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나온다.
김경수 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탈원전을 고수하더라도 최소한 오는 2080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가 계속 쌓여간다”며 “이에 대한 처분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방사성폐기물학회는 애초 맥스터 포화시기를 2021년 11월로 예상했다. 최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측은 월성원전의 정비기간이 늘어난 영향으로 포화시기가 4개월 정도 늦춰진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화시기가 임박한 것은 맞다.
-일정이 이렇게 촉박해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지 않나. 미리 대처하지 못한 이유가 뭔가.
△원전사업자는 이 같은 문제를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반대가 심해지면서 해결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의기간도 길어지고 재검토위원회에서의 논의도 길어졌다.
-맥스터 증설기간을 고려할 때 언제까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증설에 걸리는 기간은 19개월이다. 학회가 예상하는 포화시기로부터 역산하면 올 4월에는 착공돼야 한다. 재검토위의 말이 맞더라도 8월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 시기를 넘기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나.
△기본적으로는 원전 가동을 중지해야 하겠지만 정비기간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임시저장시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말 그대로 임시적인 해결이 아닌가.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쌓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최종적인 해결을 해야 하지 않나.
△맞다. 원전은 계속 가동되고 사용후핵연료는 갈수록 쌓일 것이다. 습식저장시설이나 건식저장시설 모두 임시저장시설이다. 결국에는 임시저장시설에 넣어둔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재처리든 처분이든 해야 한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핀란드와 스웨덴이 이 문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핀란드는 2015년부터 세계 최초로 심층 처분장을 건설하고 있다. 영구처분시설이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처분과 관련한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심층 처분장을 짓는 것이 어려운 기술인가.
△심층 처분장은 땅 밑 500m 정도 되는 지점에 설치해 최소한 1만년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가둬놓을 수 있어야 한다. 심층 처분장을 지으려면 그에 앞서 안전을 입증하는 시설인 URL(Underground Research Lab)부터 지어야 한다. URL에서 안전이 입증돼야 심층 처분장 허가가 난다. 핀란드는 URL로 안전을 입증했고 실제 처분장을 짓고 있는 단계다.
-우리나라의 영구처분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우리나라의 첫 원전은 1978년 지은 고리원전이다. 외국은 원전을 건설하면서 처분기술을 연구한 반면 우리는 첫 원전을 지은 지 19년이 지난 1997년이 돼서야 연구를 시작했다. 지하 120m 정도에 동굴을 뚫어서 연구용 처분시설을 만든 게 전부다. 스웨덴·핀란드와 비교하면 60~70% 수준이다. 시간으로 보면 따라잡는 데 5~10년 정도 걸린다. 연구 인프라와 연구인력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하다.
-처분기술 연구가 늦은 이유가 뭔가.
△원전을 처음 짓던 당시는 경제성장기여서 발전에 치중했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연구는 후순위로 밀렸다. 외국에 비해 20년 정도 늦었는데 이것이 계속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처분기술 수준을 높이는 게 가능한가.
△처분기술 수준을 높이려면 원자력 분야의 인력도 필요하지만 토목·지질·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있어야 한다. 연구현장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해체 분야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가능하다고 본다. 원전을 수출할 때도 건설에서 처분까지 패키지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 문제는 탈원전을 하든, 하지 않든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탈원전을 고수하더라도 원전은 2080년까지 가동된다. 그때까지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나온다.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역대 정권이 미루기만 했다. 이 문제를 미래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세대에서 해결해야 한다.
-영구처분의 마지노선이 있나.
△월성원전에는 맥스터 외에 다른 건식저장시설인 사일로가 있다. 사일로에는 사용후핵연료가 가득 차 있는데 2041년이 되면 저장기간이 끝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연장 사용을 승인하면 2053년까지 저장해둘 수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연장을 승인하지 않으면 2041년이 마지노선이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것 아닌가.
△처분장 부지가 정해진 후 인허가 서류를 검토하는 데 5년이 걸린다. 이후 처분장 건설에 5년이 소요되고, 완공되면 사용 전 심사를 받는 데 2~3년이 걸린다. 연장 승인이 없다는 조건에서 2041년에서 역산해보면 2030년이 되기 전에 부지 선정을 포함해 처분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데만 19년이 걸렸다. 훨씬 더 위험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짓기까지 10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지역사회 반대 등을 생각할 때 땅속 깊숙이 짓는 처분장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
△핀란드는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다. 우리는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다. 사회갈등이 훨씬 클 것이다. 바다 밑 암반에 처분장을 건설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연구해야 한다. 스웨덴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바다 밑에 설치했다. 육지는 지하수가 흐르지만 바다 밑은 지하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방사성폐기물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더 낮다. 방사성폐기물 출입구는 육지에 두되 통로를 만들어 바다 밑에 처분장을 건설한다면 사회갈등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감소시키는 연구도 해야 한다. 2080년까지 생기는 사용후핵연료는 4만톤이다. 빼곡하게 쌓는다고 가정할 때 국제 규모의 수영장 3개가 필요하다. 이 정도의 양을 소화하려면 6㎢ 크기의 처분장을 지하 500m 깊이에 지어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he is…
1960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충남대 해양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 지질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들어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을 담당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안면도·동해안 후보 부지 등의 조사와 시설입지 계획을 검토했고 이후 경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부지특성평가 과정에 참여했다. 1997년 이후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장, 원자력안전재단 및 에너지기술평가원 기획위원, 제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의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및 원자력시설 해체 전문분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총괄연구분과위원장, 부회장을 거쳐 지난해 말 제9대 회장으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