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대한불교조계종 수국사에서 만난 호산스님이 상월선원 천막수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조계종
“천막 밖에서 24시간 들려오는 사부대중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려오는 아파트 공사현장의 소음을 막아주는 가림막이자 장군죽비와 같았습니다. 그런 응원 덕분에 추위 속에서도 수행에 매진할 수 있었고, 9명의 스님들 모두 90일이라는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일 경기도 위례 천막법당 상월선원(霜月禪院) 무문관(無門關)의 문이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을 주축으로 9명의 스님들이 지난 11월11일 맨바닥에 천막을 치고 수행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이었다. 수행을 통해 한국불교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자며 시작한 그야말로 풍찬노숙(風餐露宿)이었다. 그동안 산속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선방에서 하는 수행은 있었지만 노숙형태로 진행되는 단체수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세간의 이목도 집중됐다.
상월선원 천막수행이 끝난 지 2주 만인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호산스님을 만났다. 호산스님은 이번 결사에서 다른 스님들의 원만한 수행을 돕는 지객(知客) 소임을 맡았다. 2주가 지났지만 스님은 천막 밖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그 날 그대로 수척한 상태였다. “먹는 양을 줄이고 추위 때문에 몸을 쓰다 보니 수행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10㎏이 빠졌고, 나중에는 20㎏까지 체중이 줄었다가 지금은 1~2㎏ 정도 회복했다”고 말문을 연 스님은 “음식을 줄여서 살이 빠졌기 때문에 하루에 한두 끼만 먹으면서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고 현재의 상태를 설명했다.
지난 7일 경기도 위례 상월선원에서 천막수행을 마치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호산스님./사진제공=수국사
수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묻자 스님은 단박에 “나오자마자 목욕탕부터 가고 싶었다”고 답했다. 스님들은 수행 중 간단한 세면과 양치만 허용됐고 환복은 물론 삭발과 면도도 금지됐다. 때문에 3개월 만에 밖으로 나온 스님들은 긴 머리에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자란 모습이었다. 호산스님은 “처음에는 라면, 짜장면, 떡볶이, 피자 같은 밀가루 음식을 가장 먹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무문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보니 이미 몸이 적응돼버렸는지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더라”며 “때를 벗기고 싶은 생각에 목욕탕부터 갔다가 갑자기 피가 돌면서 부종이 생겼다. 지금도 저녁에는 발이 붓고 새벽에는 얼굴이 붓는다”고 했다.
수행은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가 나올 수 없는 무문관에서 진행됐다. 하루 14시간 이상 좌선하고, 수행자들끼리 말을 하지 않는 묵언수행을 했다. 소통이 필요할 때는 보드에 글씨를 쓰는 것만 가능했다. 천막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고 외부인과의 접촉도 금지됐다. 식사는 쪽문을 통해 하루 한 번 도시락으로 제공됐다. 수행 전 스님들은 이런 규칙을 어길 경우 천막에서 퇴거하는 것은 물론 승적을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일각에서는 ‘자승 전 총무원장의 권력 확인 쇼’라는 비판도 나왔고, 내부에서 보일러를 때거나 수면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때문에 무문관 안에 카메라가 설치되기도 했다.
호산스님은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3개월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14시간 좌선 외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절을 하거나 포행(布行)을 해야만 했다”며 “천막 안에서의 수행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어수선해 주의가 흐트러질 때마다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고 했다.
지난 7일 경기도 위례 상월선원에서 90여일간의 수행을 마친 스님들이 천막법당 밖으로 나오고 있다./하남=연합뉴스
무엇보다 스님들을 괴롭힌 것은 추위나 배고픔 아닌 소음이었다. 호산스님은 “수행을 하려면 원래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정처가 아닌 요처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서 “방음이 안 되는 천막 안에서는 하루 종일 주변 아파트 공사소음이 들리더라. 그것을 막아주는 것은 사부대중의 기도와 염원의 소리였다. 천막 안까지 따뜻함이 전해져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고 큰 추위 없이 수행을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도 몇 차례 찾아왔다. 스님은 “해제법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스님들이 저혈당으로 쓰러져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다. 고비마다 죽어도 수행을 하다 죽겠다는 각오로 이탈자 한 명 없이 모두가 버텨낼 수 있었다”며 “해제법회를 일주일 남겨놓고 하루 21시간씩 좌선하는 용맹정진이 다가오자 밖에서 장군죽비 50개가 들어왔고, 해제 때까지 모두 다 부러트려 나갈 정도로 정진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호산스님은 이번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불자들에게도 전달하기로 했다. 그 방식은 스님들이 그랬듯이 말이 아닌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안 먹다 먹으면 모든 음식이 맛있고, 말을 안 하다 보니 무슨 말이든 기분이 좋고, 소음에 무심해지니 남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아무리 좋은 강연을 들어도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 못합니다. 불자들도 배고픔과 묵언, 좌선, 포행을 통해 상월선원 정신을 공유하고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