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대구 이마트 경산점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수백m에 걸쳐 늘어서 있다. 이마트는 이날 대구·경북지역 7개점에 마스크 81만장을 공급했지만 오후 들어 모두 동났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에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심각’이 발효됐다. 지난 2009년 75만명의 환자를 발생시켰던 신종 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즉시 유치원은 물론 초중고교의 개학을 일주일 연기했다. 증상이 있는 대구시민과 신천지 교인 3만7,000여명에 대한 바이러스 전수조사도 실시된다. 정부 당국의 이런 대응은 과도한 것도, 선제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료업계의 호소와 지자체의 아우성에 떠밀려 한발 늦게 꺼내 든 대책이다. 첫 확진자가 나오고 한달여 동안 청와대와 여당은 ‘머지않아 종식될 것’ ‘승기를 잡았다’는 식의 안이한 자세로 일관했다. 분명한 반성과 국민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비롯된 대구·경북지역의 감염은 24일까지 이곳에서만 650여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다른 지역에서의 위험 징후도 뚜렷하다. 대한민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안전지대는 이미 사라졌다. 높은 감염률에 무증상 감염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국민들의 일상은 불안과 공포 그 자체다.
확진자가 다녀간 마트와 병원, 교회와 복지관은 문을 닫아야 한다. 공장은 가동을 중단해야 하고 기업들도 사무실을 비워야 한다. 군대와 경찰서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국회의원이 확진자를 만난 국회도 폐쇄됐다.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에 휴정을 권고했으며, 정부부처와 검찰청 등은 방역작업에 돌입했다. 국가 시스템 마비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앞으로 수개월간 지속된다면 국민들의 삶과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오염국가의 낙인이 찍히자 이스라엘로 떠났던 여행객은 공항에서 퇴짜를 맞았다. 15개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소상공인 대상의 긴급경영안정자금 신청액이 1주일 만에 4,000억원을 넘었다.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모건스탠리와 노무라증권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질병 확산이 대불황의 전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감염병’이라는 가공할 재난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오후2시면 어김없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브리핑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손씻기 등 위생수칙을 강조한다. 개개인이 그것부터 지켜달라는 질병 전문가의 호소다. 마스크 사재기로 한몫을 챙겨보겠다는 얄팍한 상술에는 강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종교와 집회의 자유 역시 이 재난이 사라진 후에 되찾으면 된다. 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실천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발휘돼야 할 때가 지금이다.
2주간 자가격리됐던 수원의 한 직장인은 치킨과 맥주를 문 앞에 가져다 놓은 이웃들의 응원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하며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따스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998년 겨울 장롱 속 금반지들이 하나둘 모인 것도 ‘나부터 무언가 해보자’는 성숙한 자세에서 비롯됐다.
다음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대통령은 ‘전례 없는 강력한 대응’을 약속했다. 지켜져야 한다.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병상이 없어 부산까지 이송되다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또 나오게 할 것인가. ‘비상경제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곧 내놓겠다는 대책도 말대로 ‘특단의 것’이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검역이나 방역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침체’에 빠진다. 이를 위한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도 기대한다. ‘슈퍼 추경’에 대한 신속한 합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부는 이날 대구지역의 코로나19를 4주 내에 안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한 달, 나라의 모든 구성원이 혼연일체가 돼 재난을 이겨내자. 그리고 맞이할 빛나는 봄에 일상으로 돌아가자. /ju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