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오승현기자
국립중앙도서관은 1945년 10월15일에 국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34개월 전이었으니 우리나라 국가기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들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가 1947년 출간된 ‘백범일지’ 뒤쪽에 수록한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밝힌 소망은 이미 실천되고 있었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이 빨리 제 기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총독부도서관에 근무하던 한국인 사서와 직원들 덕분이었다. 이분들은 일본이 패망하자 곧바로 ‘도서수호문헌수집위원회’를 조직해 일본인들이 혼란 중에 장서를 반출하거나 파기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도서관 관리 권한을 빠르게 넘겨받아 장서 약 28만 권을 고스란히 지켜냈다. 이뿐 아니라 거리로 나가 당시 무수히 쏟아져나오던 온갖 인쇄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후일 중요한 사료가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국가 문헌을 지키려는 노력은 전쟁 중에도 계속됐다. 1950년 6월27일 서울에 입성한 북한군은 7월3일 소공동 국립도서관을 접수해 ‘서울시 정치보위부’로 사용했다. 같은 해 9월10일 북한군이 도서관 소장 고서 1만여 권을 북한으로 가져가려고 무단반출해 서울 우이동에 은닉했는데 서울 수복 후 찾아내 회수했다는 일화는 문헌정보학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전황이 다시 불리해지자 직원들은 12월 귀중도서 1만1,000여 권을 부산 경남관재국 창고로 옮겨 밤새 지켰다고 한다.
사서들의 오랜 노력으로 1963년에는 어렵사리 ‘도서관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 문헌 수집과 보존 기능 수행을 위해 납본(자료를 발행·제작한 자가 일정 부수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것)을 받을 권한을 갖게 됐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서량이 1,200만여 권이므로 국가 문헌 수집에서 납본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훼손되거나 국내외 여러 곳으로 흩어진 문헌들, 소중한 우리의 기록문화유산을 하나라도 많이 찾아서 수집·보존·복원하는 일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주요 과제다. 2016년부터는 전자책, 웹 자료, 각종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생산 유통되는 텍스트와 동영상 등 온라인자료의 납본을 법제화해 웹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전자책 납본비율, 날로 다양해지는 디지털콘텐츠의 수집범위 설정, 자료의 장기보존 등 해결할 과제도 많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지만 회피할 수는 없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 속에서 국가 문헌 수호에 최선을 다한 선배 사서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