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타격 입을라…화학업계, 규제에 전전긍긍

화학물질 수입선 바꾸려 해도
화평법에 등록 요건 까다로워
"최소 6개월 걸려" 호소하지만
정부선 규제 안푼채 '나몰라라'

타이어 제조업체 A사는 요즘 가슴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타이어 제조 공정 중 고무를 반죽할 때 첨가제로 넣는 화학물질인 HMTA(헥사민) 조달을 중국에서 하고 있는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입이 언제든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수입선을 유럽 업체로 변경하고 싶지만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상 신규 물질등록 요건이 까다로워 준비기간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 애로 해소에 적극 나서는 듯하지만 정작 핵심 규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26일 산업계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코로나19 경제계 간담회에서는 화평법 상 신규 화학물질 등록 절차를 간소화해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중국 이외 지역으로 수입처를 급하게 변경해야 하는데, 새로운 수입처에서 들여오는 신규 물질을 화평법에 따라 국내에 등록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30여 가지 시험(test)이 부담된다는 이유에서다. 화평법 10조와 해당 법 시행규칙 5조는 이 같은 화학물질 등록 절차를 담고 있다.


경제계 간담회 뿐 아니라 지난 20일 중소기업중앙회 등 14개 중소기업단체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만난 자리에서도 화관법, 화평법에 대한 규제 완화 요구가 제기됐다. 하지만 이낙연 민주당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은 “환경 규제 완화는 조금 더 고려해야 한다”며 앉은 자리에서 수용을 사실상 거부했다.

화평법 상 신규 화학물질 등록 간소화는 비단 A사뿐 아니라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산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업계의 요구 목소리는 더 커졌다. 예상치 못한 전염병 확산으로 수입처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정부가 규제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A사의 경우에도 HMTA를 기존 수입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들여오려면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등록하는 것처럼 30여 가지 시험 결과를 동보해야 한다. 화학업계에서는 “동일한 목적으로 쓰이더라도 제조 업체마다 물질의 배합 비율 등 미묘한 스펙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완전히 다른 물질로 보고 신규 화학물질 등록을 새로 하라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한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출신의 한 부처 고위 인사도 “현장 연구자와 산업계 입장에서는 과도한 규제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관 부처인 환경부는 “시행령에 절차 생략 규정을 두고 있어 업체들은 이를 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화평법 시행령 13조는 ‘같은 금속을 포함하는 금속화합물 등 구조와 물리·화학적 특성이 유사한 화학물질로부터 얻어진 결과를 통해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는 물질’은 제출 자료 생략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정만 있을 뿐 실제로 기업들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