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날마다 암울한 뉴스만 쏟아지고 있다.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걱정은 많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방역에 대해 말하자니 전문지식이 없고 다른 심각한 얘기는 부질없는 일인지라 머리가 어지러울 때 박물관을 찾는 기분으로 문화재 얘기나 해볼까 한다.
국보 78호와 83호는 문화재등록부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등재돼 있다. 두 존상은 비슷하지만 국보 78호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복잡한 모양의 상의를 입고 있는 반면 국보 83호는 삼산관이라고 일컫는 단순한 관을 쓰고 상의는 벗은 듯한 모습에서 차이가 있다. 국보 83호는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 국보 고류지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아서 더 흥미롭다. 그런데 과연 이 존상들이 미륵보살상일까.
당초 미륵보살상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불상에 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했던 일본의 학자들이 이 존상들을 미륵보살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륵보살상이라고 본 이유는 일본의 많은 반가사유상 중 하나에 미륵보살이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구려·백제·신라에서 반가사유상이 제작됐지만 명칭이 기재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불상에 관한 비교연구가 진행되면서 일본 학자들의 견해에 의문이 제기됐다. 반가사유상은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제작돼 순차적으로 중국·우리나라·일본으로 전래됐다. 간다라 지역의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의 협시보살 또는 단독상으로 제작됐는데 관음보살상과 태자상(석가모니의 출가 전 왕자 시절의 상)으로 본다. 서산 마애불에 협시보살로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간다라식으로 본다면 이 반가사유상은 관음보살상이 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태자상으로 보이는 것이 많은데 부조의 불전도 중 출가결의, 수하관경 등 다양하다. 태자상이라고 명문의 기재가 있는 것도 있다. 용화수 아래의 미륵보살상이라고 보는 작품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미륵보살상인지 분명하지 않다.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용화수 아래의 미륵불상은 반가사유상이 아니라 선정상 또는 설법상이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반가사유상 중 다수는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태자상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현재 다수의 견해는 반가사유상에 대해 미륵보살상이 확실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립박물관은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만 기재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수하관경의 태자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국보 83호의 경우 상의는 벗고 있거나 투명할 정도로 얇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더운 지역인 인도의 양식이고 간다라 지역이 고향인 미륵보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반가사유상은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수하관경의 태자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문화재 한 번 검색해보시고 기분 전환하시길, 우리나라가 코로나19의 깊은 늪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