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워런, 블룸버그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금융계 필수장비 블룸버그 터미널
일자리·생산성 향상에는 도움 안돼
워런은 금융위기후 CFPB 만든 주역
TV토론회서 내비친 금융개혁 의지
샌더스 대세론 꺾을 계기될지 관심

폴 크루그먼

지난주 수요일의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는 이전에 비해 들을 만한 내용이 많았다. 특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뒤늦게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가 탁월한 기업가라는 사실과 엘리자베스 워런의 기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워런과 블룸버그에 관해 우리가 알게 된 이 두가지 사실은 최근 몇 주간 쏟아져 나온 언론보도 내용과 충돌을 일으킨다. 일부 언론과 논객들은 블룸버그 띄우기에 나선 반면 워런의 지지자들은 그동안 그에 관한 뉴스가 삭제됐다며 여론조사 결과는 틀리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워런과 블룸버그의 대립으로 논쟁의 초점은 민주당이 선점한 대단히 중요한 이슈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에서 지나치게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업의 고삐를 죄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지도자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인 추한 돈벌레가 아니라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수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집중적으로 이뤄진 금융규제 완화로 경제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업을 운영하기보다 매매를 해야 큰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갑작스레 열렸다. 이 같은 금융거래는 기업들로 하여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빚을 짊어지게 한다. 빚을 감당 못 하는 기업들은 결국 파산하고 이는 다시 일자리 파괴로 연결된다. 금융분야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규제 완화 이후 두 배로 늘어났다. 이는 자본과 유능한 인력이 생산적 활동으로부터 이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월스트리트의 어마어마한 팽창이 경제의 나머지 부문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금융권의 비대화로 극소수의 사람만이 돈을 벌었을 뿐 일반 가정의 소득 성장세는 오히려 둔화했다. 또 금융업의 고속성장은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꼽히는 경제위기에 기반을 제공했고 블룸버그를 억만장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블룸버그는 분명 탁월한 비즈니스맨이다. 적어도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파렴치한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돈에 눈이 뒤집힌 금융업계의 협잡꾼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팔아 부를 일궜다.


그를 갑부로 만든 것은 초대형 용량의 금융정보에 구독자들이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블룸버그 터미널이다. 장비 사용료는 연 2만4,000달러로 매우 비싸지만 금융업계에서 블룸버그 터미널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장비로 통한다.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트레이더들보다 시장이벤트에 1~2분가량 앞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수지맞는 사업이다. 그러나 과연 경제에 유익할까. 아니다. 금융정보에 몇 분 먼저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일자리와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 결정을 현격히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까. 분명 아니다. 블룸버그는 막대한 돈이 들지만 결국 별 소득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금융계의 군비경쟁에 편승해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이쯤에서 엘리자베스 워런에게로 돌아가보자. 워런은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려다 스텝이 꼬이면서 후보지명 경쟁에서 뒤처졌다. 그녀는 실현 가능성이 전무한 급진적인 의료보험 개혁안에 동조의사를 밝힌 데 이어 원조 제안자인 샌더스조차 언급하지 않았던 재원조달 방안까지 제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전까지 워런은 금융업계의 편법과 꼼수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저 구호만 외친 게 아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직후 창설돼 금융권 개혁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CFPB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핵심 기능을 제거당하기 전까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평범한 가정들의 금융손실을 막아주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결론은 이렇다. 헬스케어와 달리 금융개혁은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블룸버그를 포함한 다른 후보들이 워런이 제시한 것과 같은 타입의 개혁에 동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확고한 금융개혁 의지를 가졌는지, 샌더스처럼 이길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 정치자본을 낭비하지는 않을지 물어봐야 한다.

지난번 토론회는 금융 협잡꾼들의 확실한 친구이자 개인적으로 부패한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월스트리트의 부패와 만연된 방만함 및 사기행위가 강력한 정치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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