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금까지의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친박·중진 다 날렸더니 이길 후보가 태부족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8일부터 이날까지 서울과 경기도 등 주요 지역에 출마할 후보자를 추가로 모집한다고 밝혔다. 지원한 후보자들의 경쟁력이 부족한 곳과 추가로 더 경쟁력 있는 후보자들이 공모할 곳이 있다는 게 이유다.
발표가 나자 당장 배현진 송파구을 당협위원장에 대한 문제가 일었다. 배 위원장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이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아 지역활동을 했고 지난 21일 공천 면접까지 봤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 지역에 도전할 추가 후보를 공모한 셈이다.
통합당 내에서는 ‘정치는 현실’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송파구을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전략·기획가로 유명한 4선 최재성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이라며 “통합당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서 최 의원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현재 지원자가 맞서기에는 약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배 위원장이 다른 지역에 추가 공모하기 전에는 공천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관록 있는 정치인을 다 날렸더니 나설 선수가 없어진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서울지역 선수는 태부족이다. 공관위는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 등 대선주자급 의원들을 서울에 전진 배치해 수도권 돌풍을 기대했다. 이들은 PK에 멈췄다. 중진들은 날아갔는데 채울 선수가 부족해졌다. 공관위가 △중구·성동갑 △동대문을 △중랑갑 △중랑을 △노원을 △마포을 △양천갑 △강서병 △영등포갑 △동작갑 △송파을 △강동을 등 12개 지역을 무더기로 추가 공모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의원은 “서울 지역은 부동산가격 상승 등으로 자산 수준이 높아져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나오기를 원한다”며 “이는 일반 정치 신인으로는 채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미래통합당에 입당한 임재훈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등의 환영을 받고 있다. 임 의원은 “패스트트랙으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연합뉴스
‘탄핵의 강’ 넘으니 ‘패스트트랙의 골’ 나와
그래서 통합당과 공관위는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과거 안철수계 인사 이동섭 의원(노원을)과 김철근 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공보단장(강서병), 장환진 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 집행부위원장(동작갑), 옛 안철수계 임재훈 의원(안양동안갑),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장진영 변호사(서울 동작갑) 등이 입당했다. 이들의 지역구는 공관위가 추가 공모를 원한 곳과 일치한다. 실제로 추가 공모해 면접을 본다.
공천 가능성은 높다. 통합당이 약세인 서울중구성동구을과 관악구을은 새로운보수당에서 온 지상욱 의원과 오신환 의원이 각각 공천됐다. 당내에서 이들의 지역 경쟁력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범바른미래당계 의원들이 들어오자 당장 TK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지난 1년간 자유한국당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두고 국회를 마비시킬 정도로 싸웠다. 패스트트랙이 지정되는 과정에서 몸싸움했던 의원들은 검찰에 기소됐고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힘으로 눌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거세게 저항했던 이은재 의원 등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들에게 문을 연 것이다.
TK 지역 의원들의 분노가 만만치 않다. TK는 탄핵 사태 때도 당을 끝까지 지켰고 패스트트랙도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럼에도 ‘친박’의 낙인으로 단두대 위에 올라있다. 한 TK 지역 의원은 “공천은 이기는 공천,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 점을 안다”면서도 “그래도 당에 4년간 기여한 의원들의 노력이 당과 등지고 싸운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반면 바른미래당계 의원들은 “탄핵의 강도 넘었는데 패스트트랙이라는 개울도 못 넘겠느냐”며 미래로 가자고 외치고 있다. 실제로 임재훈 의원은 통합당에 들어오며 “패스트트랙으로 상처를 드린 분들에게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바른미래당 출신 한 의원은 “들어와서 양지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공천을 신청한 곳은 모두 기존 통합당 인사가 이길 수 없는 험지”라며 “몸을 던져 통합당의 총선 승리에 일조하겠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강조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부산 중구·영도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곽규택 후보가 지난 26일 영도대교 광장에서 이언주 의원의 전략 공천에 반발해 삭발하고 있다./사진=곽규택 후보 페이스북
전략 공천 불복, 지역서 미리 뛴 후보들 ‘삭발’ 투쟁
공관위의 전략 공천마저 잡음을 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중구·영도구다. 이 지역은 이언주 전 전진당 대표, 현 통합당 의원의 전략 공천이 유력하다. 이 의원이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전진당을 거쳐 통합당으로 왔지만, 개인의 경쟁력과 인지도는 탁월하다는 것이 이유다.
전략공천 소식에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총선을 준비하던 곽규택 예비후보는 지난 26일 영도대교 아래 유라리 광장에서 삭발하며 “자칭 보수통합의 주역이고 당 대표라서 전략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험지 출마나 불출마 선언을 한 다른 보수 통합 주역들에 비해 너무나 큰 특혜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 의원뿐만 아니다. 만약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가 PK 지역에서 총선을 치르게 해주면 다시 TK 의원들과 당내 중진들이 반발할 수 있다. “왜 이들만 예외냐”라는 것이다. 당장 인천 미추홀을 공천에서 배제된 3선 윤상현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윤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도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나가 당선됐다”며 “이번에도 무소속 출마를 예상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정국 때 몸을 던진 이은재 의원도 공천 재심을 청구했다. 최악의 경우 탈당 또는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 밖에 TK 지역의 칼바람이 초·재선들을 휩쓸면 우리공화당 등으로 당적을 옮겨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은 계속해서 나온다. TK 지역 공천 면접은 3월 2일 시작된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