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초·중·고교의 개학 연기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각종 온라인 가정학습 방안을 공개했지만 학교 정보기술통신(ICT) 인프라 수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달할 만큼 크게 뒤떨어져 실효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누리과정과 같은 무상교육,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선심성 복지예산에만 교육 투자가 집중되면서 디지털교과서·사이버학급 등을 포함하는 학교 인프라 투자는 장기간 외면돼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개학연기 장기화로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온라인 가정학습이 본격화될 경우 원격수업 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35일(8주 이상) 이상의 3단계 휴업 시에는 학교수업 시간표에 준하는 온라인 학습이 이뤄져야 하고 15일(3주) 이하의 1단계, 16~34일(4~7주)의 2단계 휴업에도 온라인학습방 개설 및 수업 운영, 학생별 피드백 등 인프라 활용이 요구된다.
우선 개학 연기로 전 학생이 새 교과서를 받지 못한 상태지만 대안이 될 디지털 교과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만 발행돼 있다. 발행 교과도 영어·사회·과학 과목에 그쳐 주요 핵심 과목인 국어·수학의 디지털 교과서는 전무한 상태다. 특히 교사가 없는 환경에서 멀티미디어 자료가 가장 요구되는 초교 1~2학년 대상으로는 전 과목에 걸쳐 단 한 권의 디지털 교과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교도 디지털 교과서 발행 교과가 영어 과목에 그친다. 예습 준비를 한다 해도 교과서 없이 강의 동영상과 자료에만 의존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코로나19 대응 학사운영방안’을 통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에듀넷’의 디지털 교과서, 17개 시도교육청의 사이버 학습터를 통합한 ‘e 학습터’, 교육방송(EBS) 학습사이트 등 온라인 학습지원 사이트를 안내했다. 하지만 교과학습과 평가문항·해설 등을 제공하는 e학습터 대상은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3학년의 국어·영어·수학 및 사회·과학 과목에 그친다. 초등학교 1~2학년은 2일부터 국어·수학 과목에 한해 첫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 운영 여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고교생은 아예 서비스 대상에서 빠져 있어 고교 단계의 학습 대책으로는 EBS 동영상 활용이 사실상 전부다.
온라인 학습방 등 사이버학급 구축에도 난맥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e학습터와 연계된 ‘위두랑’을 활용하면 교사가 사이버 교실을 개설해 수강강의 편성, 출결·이수 체크, 시험출제 및 평가, 피드백 등 ‘맞춤 학급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e학습터 대상이 아닌 고교의 경우 위두랑 서비스에서도 제외돼 있다. EBS가 2일부터 학습 뒤 인증서를 발행하는 온라인 교실을 시작하겠다고 공지했지만 e학습터와는 달리 국가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과 연동되지 않아 온라인 수업이 본격화될 경우 출결·평가 등의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신뢰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학 연기를 3주로 늘린 대구시교육청에서는 초교에서 고교에 이르는 통합 사이버학급 등 온라인 수업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상태다.
교육계에서는 교육 디지털 투자의 장기 부재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태블릿 기기로 수업하는 교육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 일반 교실에는 태블릿 기기는커녕 인터넷마저 제대로 안 깔려 있다. 디지털 교과서가 있다 해도 활용이 힘들어 외면받았고, 예산 문제로 교실 정보화 구축은 더욱 느려졌다는 것이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개학 연기에 누적된 투자 부족 문제가 더해지며 온라인 학습 활용 및 평가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이번 기회에 OECD 수준의 학교 정보화 투자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