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금융당국의 주가연계신탁(ELT) 판매 총량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압도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LT는 증권사가 발행하는 ELS,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을 은행이 인수해 특정금전신탁 계좌에 편입시켜 판매하는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해외연계금리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재발 방지책의 일환으로 은행 신탁에서 판매했던 ELT에 대해 지난해 11월 잔액 이내로 판매제한 조치를 취했다. 총량 규제에 따라 ELT뿐 아니라 ELS 시장 역시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지만 최근 ELS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ELT 역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몰려들자 ELT 판매를 줄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본격적인 판매 총량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결국 ELT가 투자자와 규제 메스를 들이대는 당국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 됐다.
1일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2월 ELS·ELB 발행 총량은 15조9,282억원(공·사모)으로 집계됐다. DLF 사태 이전인 지난해 1·2월(10조7,239억원)과 비교해도 48.5%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은행의 ELT 물량 인수 규모는 9조8,000억원가량으로 전체 발행액의 62.8%를 차지했다. 통상적으로 ELS 발행액의 절반가량을 은행신탁이 인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량 규제에도 여전히 은행이 가장 ‘큰손’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라임 사태 이후 사모펀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연초 주식 시장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공모 ELS나 ELT에 투자금이 다시 몰리고 있다”며 “기초자산 역시 주가지수나 상장주식이라는 점에서 상품 이해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 투자자산으로 재부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당국의 총량 규제가 이달부터 본격화되면서 살아난 ‘투심’과 달리 은행은 인수 규모를 줄이는 한편 판매 역시 속도 조절에 착수해야 한다. 증권사도 발행 물량을 인수할 새로운 큰손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은행 다음으로 현재 증권사 ELS 물량을 인수하는 자산운용사의 인수 비중은 1.5~3.0%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자와 은행과 증권사 모두 ELT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투자상품 부재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총량 규제와 함께 기초자산까지 규제하면서 또 다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규제안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주가지수 5개(코스피200·S&P500·유로스톡스50·HSCEI·닛케이225)만 편입하도록 했다. 5개 지수 가운데 특정 지수가 부진할 경우 위험 노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특정 지수가 부진하면 헤지 대상의 쏠림과 함께 유동성 위험 등에 노출될 수 있다”며 “새로운 기초자산 도입이 원천적으로 제한돼 새로운 수익구조 개발과 리스크 분산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