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상유정책 하유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규제)을 내놓으면 민간은 빠져나갈 대책을 찾아낸다는 뜻인데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 기업인이 불합리한 정부 규제를 지적하며 털어놓은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 오히려 뒤처져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그의 의견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규제 등 현 정부의 여러 정책은 전문가들로부터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다 된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그러한 비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달 중순 이후 본격화될 상장사 정기주주총회도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올해 주총에서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감사 선임 안건 부결이, 정기주총 1주 전까지 공시되는 감사보고서에서는 더 많은 비적정 감사의견이 예상된다. 지난 2017년 말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된 가운데 감사 선임 안건에 대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지분율 3%로 제한해 부결 사태를 일으키는 ‘3%룰’은 1960년대 상법 제정 당시부터 그대로 남아 있다. 주총에서 주주 권리행사를 강화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기업들이 의결권 확보를 위해 직원을 주주 집으로 직접 보내거나 대행업체를 고용해야 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2018년 말부터 시행된 신외감법(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기업에 큰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 회계 전문가는 “주기적 지정제 도입으로 감사인이 교체된 기업에서 새 감사인이 전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거나 교체되지 않은 감사인은 교체 후를 대비해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민감한 사안이라 기업들이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취지는 좋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 없는 밀어붙이기식의 정책 추진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민간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고 일일이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상유정책 하유대책’은 반복될 것이다. soco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