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 데 대해 경악을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향한 강경 담화를 발표하면서 대남노선을 총괄하는 핵심축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남측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제1부부장’ 명의의 대남 메시지 표현이 매우 거칠었던 것은 이례적인 일인 만큼 ‘백두혈통’이라는 김 제1부부장의 북한 내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겁을 먹은 개’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바보스럽다’ ‘저능하다’ 등 거침없고 직설적인 표현을 다수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수위와 화법 등을 볼 때 그가 김정은 정권의 명실상부한 핵심 실세임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그가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이제는 자신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백두혈통이면서 대남특사의 경험이 있고, 특히 리만건 해임 이후 대남문제까지 관장하는 조직지도부의 실세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단순한 대남경고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판단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판문점 회동에 정예 측근들을 대동해 눈길을 끌었다. 왼쪽부터 김 위원장의 의전을 전담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연합뉴스
김 제1부부장이 백두혈통인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대남 강경 담화는 사실상 김 위원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 제1부부장은 2018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김 위원장의 메신저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1,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을 밀착 보좌해 백두혈통으로서 유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문 대통령을 만난 김 제1부부장이 담화문을 낸 것은 김 위원장이 말을 한 것이나 똑같은데 대남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백두혈통 김여정의 첫 대남 담화 내용은 사실상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우리 정부에 대한 최고 수준의 불만과 유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김정은 명의의 비난 담화를 내놓지 않은 것은 우리측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김 제1부부장을 내세운 것은 4월 총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혼란한 청와대를 흔들기 위한 대남전략이라고 관측했다. 남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의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권이 어려울 때 정권을 몰아붙이면 청와대에서 대북 파격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청와대가 대북 유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게 되면 한미관계도 흔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김 제1부부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반증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미 비핵화 협상 실패 등으로 권력기반이 약해졌을 경우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백두혈통으로 대표되는 가족뿐이라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25일 숙청설이 나돌던 고모 김경희를 갑자기 등장시킨 것도 이 같은 해석과 궤를 같이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 당일인 지난 1월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정은(왼쪽부터) 위원장, 리설주 여사,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 김여정·조용원 당 제1부부장./연합뉴스
남측에 우호적이었던 김 제1부부장이 국정운영 전반에 나서며 대남 강경 메시지를 낸 만큼 청와대도 현재의 대북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임 교수는 “북한은 이번 김여정 담화를 통해 3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이후에도 우리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대화재개나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북한이 김여정 명의(사실상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로 청와대 행태에 대해 비논리적이고 저능한 사고,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고 묘사하고, 완벽하게 바보스럽다고 조롱한 것에 대해 정부는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 전략이나 메시지에 문제가 없었는지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