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대문 안에 남은 마지막 재정비촉진구역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가 정비구역에서 대거 해제된다. 지난해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세운지구 내에 위치한 노포 보존문제가 고개를 들면서 서울시가 사업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지 약 1년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시는 사업이 진행된 곳은 정상대로 진행하되, 나머지 구역은 대규모 개발 대신 도시재생을 통해 도심 산업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번 구역 해제와 함께 서울 사대문 안에 대규모 주택 공급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세운지구는 1979년 도심 재개발구역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오락가락 행정’의 대명사로 불렸다.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시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고, 2014년 박원순 시장이 세운지구 분할 개발을 결정해 지난 2017년 첫 사업시행인가가 났다. 하지만 지난해 사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 도시 재생으로 운명이 뒤바뀌게 됐다.
4일 서울시가 발표한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에 따르면 세운지구 171개 구역 가운데 정비구역 일몰제에 해당하는 152개 구역이 일괄해제되고 도시재생으로 전환된다. 해제 구역 중에는 토지주 30%의 동의를 받아 일몰 연장을 기한 내에 신청한 세운 2구역도 포함됐다. 사업이 진행 중인 11개 구역과 세운지구에 연접한 수표정비구역은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한다. 나머지 8개 구역은 사업이 이미 종료된 곳들이다. 서울시는 4월까지 일몰 관련 행정절차를 완료하고 세운지구 변경 절차에 들어가 10월 중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에서 살아남은 구역은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3-1구역과 3-3, 3-5구역 그리고 사업시행인가가 완료된 3-2, 3-6, 3-7구역이다. 또한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들어온 5-1구역과 5-3구역, 3-9구역, 3-3구역, 및 수표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 등도 사업을 계속 진행키로 했다. 노포 보존 논란의 불길을 댕긴 을지면옥과 3-2 구역 토지주들은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어서 서울시는 추후 이해 당사자 협의를 계속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11개 구역도 앞으로 세입자 이주대책과 정착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서울시는 세입자 이주대책을 마련한 후 정비사업에 들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일부 구역에 세입자 이주 공간을 마련한 뒤 나머지 구역을 재개발하는 ‘순환적 정비사업’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도로나 공원 대신 토지를 기부채납 받아 서울시와 중구, 서울주택도시공사(SH),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동으로 산업 거점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계획된 거점 공간은 8곳으로 기계·정밀, 산업용재, 인쇄 등 각 구역별 산업입지 특성을 반영한 공공임대복합시설, 스마트 앵커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공간의 상당 부분은 정비사업 이주 소상공인들을 위해 주변 임대료 시세보다 저렴한 공공임대상가 700가구 이상으로 채울 예정이다.
한편 사대문 안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인 세운지구가 도시 재생으로 돌아서면서 도심 내 주택 공급 감소도 불가피하게 됐다.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돼 구역 해제에서 제외된 3구역만 따져보면 신규 공급 물량이 약 3,000가구 정도 된다. 다른 구역들도 정상 개발된다면 도심 주택 공급 효과를 상당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재생으로 전환될 경우 대규모 주택 공급은 불가능 하다. 업계 관계자는 “도심 내 주택을 늘려 ‘콤팩트 시티’를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기조에도 반하는 조치”라며 “도시재생으로 전환하더라도 주택 공급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