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가운데) 변호사가 4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4·15총선을 42일 앞둔 4일 옥중서신을 통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라고 호소하면서 사실상 선거판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의 입을 빌려 총선을 앞두고 잇따른 신당 창당으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보수진영을 질타하면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대승적으로 단결해달라는 총선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의 편지로 통합당 공천 결정에 반발한 의원을 영입하려던 ‘태극기 세력’의 주축 자유공화당은 보수통합에 동참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에서 “많은 사람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현 집권세력으로 인해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를 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질타했다. 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제기된다.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거대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울분이 터진다는 목소리도 많이 들린다”며 “하지만 나의 말 한마디가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 침묵을 택했다”고 그간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던 사정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정치적 뿌리인 대구·경북(TK) 지역 공천 면접을 마치는 날 나왔다는 것이다. 탄핵 당시 끝까지 당을 지켰던 TK 의원들은 통합당의 ‘물갈이’ 공천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해 있다. 당내에서는 컷오프(공천 배제)되면 탈당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난 2016년 진박(진짜 친박근혜) 논란을 키운 수도권 친박계 의원은 대부분 공천에서 배제됐다.
특히 태극기 세력과 전광훈 목사가 힘을 보탠 자유공화당이 통합당이 분열하는 곳에 문을 열어놓았다. 자유공화당은 조원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이끌고 있다. 자유공화당의 전신인 우리공화당은 탄핵에 반대하며 자유한국당에서 분화했다. 당 설립의 명분이 박 전 대통령이다. 이에 전날 친박의 맏형인 서청원 의원과 공천에서 컷오프된 김순례 의원이 합류했다. 조 대표는 “통합당에서 컷오프되는 이는 보통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이라며 TK 공천 결정 이후 덩치를 키우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나라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고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 앞에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 같은 거대 야당의 모습에 실망도 했다”면서도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고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통합당에 힘을 실어준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인사가 각자도생을 선택할 경우 명분을 잃고 ‘밥그릇 지키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박 살생부’와 탄핵으로 박 전 대통령과 맞섰던 김무성 의원은 이날 곧바로 입장문을 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우파 보수 대통합’ 메시지를 열렬히 환영한다”며 “힘을 합치지 못하면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고,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을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문수·조원진 자유공화당 공동대표는 옥중편지가 날아든 지 한 시간도 안 돼 국회 정론관을 찾아 “야권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밝히셨다. 존중하고 감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통합당이 힘을 합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이 무능 정권의 폭정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통합당은 명실상부 정통 자유민주 세력 정당으로 우뚝 섰다”고 강조하면서 보수의 적통이 통합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경우·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