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원 경제부 차장
“나는 마스크 쓸 자격도 없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한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최근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강한 질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국과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이어지는 수백명의 행렬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50일이 다 되도록 마스크 공급 부족에 속수무책인 것은 초기에 수급 문제를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매점매석 금지고시를 제정한 게 지난달 5일인 걸 고려하면 한달 가까이 지났어도 가수요로 인해 사재기 열풍까지 나타났다. 오히려 정부는 조급함에 “이르면 내일부터 살 수 있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기까지 했다.
이 같은 마스크 대란 속에는 우리 노동경직성의 민낯도 드러났다.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조업체들은 생산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실시한 현장점검에서 업체들은 “인력부족 등으로 생산량 증대에 애로가 있으며, 특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생산인력 의존도가 높아 추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고 건의했다.
우리의 경우 정규직을 한번 뽑으면 다시 내보내기 힘들 정도로 노동경직성이 높고 인건비 부담이 대폭 증가해 업체들은 인력 충원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확대(3개월->6개월) 역시 국회에서 잠자고 있어 그나마 특별연장근로를 통해 주문량을 소화하는 실정이다. 평소 국내 업체들의 마스크 생산량은 300만장 안팎이었으나 코로나19 발발로 수요가 급증해 3배 이상 물량이 늘어나면서 사실상 최대 케파로 가동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이 폭증하면서 배송 인력이 모자란 쿠팡 등의 업체도 마찬가지다. 수요가 몰릴 때 인력을 대폭 늘리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신규채용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마스크 업체들의 경우 코로나19사태가 종료되면 마스크 수요도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 정규직 신규 채용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이 영세업체인데 직원만 늘려놓으면 향후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을 늘리자니 희망하는 인력이 많지 않다. 이럴 때는 급여 수준을 높이는 방법도 있으나 하루 생산물량의 절반을 노마진으로 공적물량으로 공급하고 있어 업체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고 호소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방법도 최근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 인상 요인으로 부담스럽다. 이로 인해 지난주 말에는 마스크 생산에 군인들이 투입돼 포장과 배송을 했다. 만약 노동 유연성이 높아 한시적으로 인력을 대거 충원해 공장가동률을 높였다면 마스크 공급 확대 시점이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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