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 백상경제연구원장
맹자 ‘이루(離婁) 하편’에는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자산이 길을 가다가 백성들이 얼어붙은 강을 위태롭게 건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마차를 내줘 사람들을 무사히 건너게 했다. 개혁정치로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자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훗날 맹자는 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백성들을 건네준 행동 자체는 선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산은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맹자의 답변은 이렇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다리를 만들어줬으면 백성들이 강 건널 걱정을 하지 않을 텐데 나랏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재상이 일일이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은 좋은 정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스템을 갖춰주는 것이 정부나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이 고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혼란이 심화하는 배경에는 시스템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정부 정책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고 나면 정책이 달라졌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장관이나 대통령이 불쑥불쑥 끼어들면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사태 수습을 지휘할 사령탑이 청와대인지 총리실인지 질병관리본부(질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코로나의 진원지인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제한을 둘러싼 혼선이 대표적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감염학회는 사태 초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입국제한 지역 확대를 통한 오염원 차단을 주문했지만 외교부와 보건복지부는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한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외면했다.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 질본의 말도 서로 달랐다. 정부가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확진자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마스크 공급을 둘러싼 혼선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첫 확진자가 나온 후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판매수량과 판매처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말이 달라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코로나를 둘러싼 혼선을 보고 있노라면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의 복사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의사협회는 메르스 사태 이후 발간한 백서를 통해 신속한 대처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역학조사관 확충,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소통 등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이 백서에서 지적한 내용 가운데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초기 전파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침체를 우려해 “계획된 행사를 진행해달라”고 독려하다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경증환자와 중증환자의 치료 지침이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태도 잇따랐다. 초·중·고등학교 개학 연기를 놓고 교육청과 총리실이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부처마다 말이 달라지면서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방역 거버넌스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왔겠는가.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가 겪은 집단 감염증 사태는 한두 번이 아니다. 사스와 신종인플루엔자·메르스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정부의 대처 방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재난과 감염병 대처에 있어서는 초동 대처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스템을 갖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컨트롤타워에 힘을 실어줘 외풍을 차단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현장에서 빨리 적용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잘못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cs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