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초치된 도미타 고지(가운데) 주한일본대사가 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오승현기자
전문가들은 일본의 입국제한 강화 조치를 두고 청와대와 각 정부 부처들이 보인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진단했다. 이미 100여개국이 앞다퉈 한국발 방문객 입국을 제한·차단한 상황에서 발병국인 중국에는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일본에 대해서만 기다렸다는 듯 속전속결로 ‘전투준비 태세’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불거진 ‘수출규제-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갈등처럼 한일 양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자국의 정쟁 요소로 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충돌로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진 뒤까지 한일관계가 악화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6일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이에 앞서 외교부는 5~6일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두세 차례나 청사로 불러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바 있다. 외교부가 특정 사안을 놓고 같은 나라 대사관 관계자를 이틀 연속 불러들여 따진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간 추가 조치를 자제할 것을 수차례 촉구했는데도 충분한 협의나 사전통보도 없이 부당한 조치를 강행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조속히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도미타 대사는 이에 대해 “앞으로 1~2주가 코로나19의 종식 여부가 달린 중요한 시기”라고 양해를 구했다.
외교부는 나아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현시점을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에 성과를 보이는 시점’으로 스스로 규정한 뒤 일본의 조치에 “방역 외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지금껏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입국제한·금지 조치를 내놓는 동안 ‘방역 외의 다른 의도’를 언급한 대상은 일본이 처음이다. 강 장관은 심지어 지난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가 입국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그간 제재 조치를 취한 나라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더욱이 똑같이 방역능력을 갖춘데다 같은 날 일본보다 더 강도 높은 전면 입국금지 카드를 꺼낸 호주에는 기존 국가와 같이 의례적인 항의 입장만 전달해 더 뚜렷하게 비교됐다.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보다 냉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본이 내놓은 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게 우선돼야지 ‘다른 의도’ 등과 같은 말을 외교 당국자들이 해서는 안 된다”며 “(그래 놓고) 일본과 같은 조치를 취하면 우리 정부도 우스운 꼴이 된다”고 우려했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한일관계는 한·호주 관계와 다르다”며 “일본이 비우호적인 조치를 취했으니 상응 조치는 당연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의 공세적 자세는 중국 정부를 대하는 태도와는 180도 다른 차원이다. 한국 정부는 올 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을 때도 입국제한 카드를 전혀 만지지 않다가 2월4일에야 이미 자국에서 봉쇄된 후베이성에 한해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26일 김건 차관보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청사로 불렀을 때도 외교부는 “초치가 아니라 면담”이라고 해명했다. 이달 5일 기준으로 중국 17개 성이 역으로 한국에 입국제한 조치를 내리고 860명을 강제 격리했는데도 별다른 강경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는 우리 정부의 이번 대응을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부터 이어진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분석한다. 각종 스캔들과 미흡한 코로나19 대응으로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치적 카드를 꺼낸 가운데 한국 정부까지 이를 맞받아치는 형국이 됐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카드로는 △일본에 대한 오염지역 지정 △여행경보 격상부터 △입국제한이나 금지 조치 △비자 규제, 최악의 경우 △지소미아 종료 실행 △도쿄올림픽 보이콧 등까지 거론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수출규제를 원상복귀해 달라고 수차례 제안했음에도 일본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입국까지 막으니 청와대가 격앙된 게 아닌가 싶다”며 “(그동안) 쌓인 것이 많다 보니 자칫하다가는 (한일관계가) 아예 냉각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윤경환·허세민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