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듣는 여행] '제5원소' 속 광란의 아리아 울려 퍼졌던 英 공연예술의 메카

[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 애칭으로 더 유명
로열 오페라단·로열 발레단 상주
극장 휴관하는 7~8월 제외하면
언제든 오페라·발레 볼 수 있어
거쳐간 예술인 발자취 소개하는
'레전드 앤 랜드마크 투어' 눈길
다양한 식사에 음악적 풍미 더한
극장 안 레스토랑도 이용해볼만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사진제공=진회숙 씨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사진제공=진회숙 씨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내부에 위치한 레스토랑. /사진제공=진회숙 씨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사진제공=진회숙 씨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를 본 사람이라면 소프라노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외계행성의 아름다운 극장을 기억할 것이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에 나오는 ‘광란의 아리아’.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비롭고 환상적인 노래를 배경으로 크림색과 금색, 빨간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려한 극장 내부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바로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극장이 휴관하는 7, 8월을 제외하면 언제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다. 9월에서 이듬해 6월까지가 공연 시즌인데, 극장 홈페이지에 가면 한 시즌의 공연 스케줄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 동안 여러 프로덕션의 오페라와 발레를 번갈아가며 공연한다. 한국처럼 한 작품을 며칠 동안 공연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즌 내내 몇 작품을 돌아가며 공연하는 것이다.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코벤트 가든에 있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코벤트 가든’ 하면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여기에 로열 오페라단, 로열 발레단,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정말 멋진 곳이다. 영화 ‘제5원소’ 에서도 코벤 소령 역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가 극장에 대한 소감을 묻는 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멋지군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왕실 문장이 새겨진 붉은 장막, 무대 전면을 장식한 라파엘 몬티의 부조 ‘음악과 시’, 아름다운 조명이 설치된 발코니와 박스석, 스카이 블루로 처리된 돔 천장 등 모든 것이 “나는 로열이야. 로열”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2층 발코니 석에 앉아 내려다보니 익숙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을 담은 영상을 볼 때마다 늘 보았던 바로 그 광경. 황금빛 왕실 문장에 새겨진 붉은 장막이 드리워진 무대, 그리고 저 멀리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들려오는 악기 조율 소리. 곧 지휘자가 입장해 지휘대에 서면 장내에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영상으로만 보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객석의 수용인원은 2,256석으로 런던에서 세 번째로 많다. 이 극장은 1858년에 지어졌는데,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아래층에는 스톨이라 부르는 객석이 있고, 그 위로 네 개 층에 걸쳐서 발코니석과 박스석이 있으며, 제일 꼭대기에 최상층 관람석(Amphitheatre)이 있다. 붉은빛의 벨벳 커튼, 현대식 기계장치를 갖추고 있는 푸른 천장, 금빛으로 빛나는 무대 위의 아치, 가스램프가 있던 자리에 설치된 붉은빛과 황금빛 조명들, 모든 것이 ‘로열’이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메인 극장 외에 420석 규모의 스튜디오 극장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무료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발레 연습실을 겸한 200석짜리 스튜디오에서도 실내악, 독창회 등 소규모 음악회와 워크숍이 열린다. 이렇게 한 극장에서 여러 종류의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무려 30개의 무대 세트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백 스테이지 덕분이다. 그래서 공연 시즌 중에는 크고 작은 공연들이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한다.

여기서 케네스 맥밀란이 안무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를 보았다. 1부가 끝난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로비로 나왔다. 유럽 극장의 중간 휴식 시간은 상당히 길어 관객들은 식사를 하거나 와인이나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본 극장 옆에 붙어 있는 폴 햄린 홀이 그런 기능을 하는 공간인데, 극장의 어느 층에서든지 바로 이 홀로 나갈 수 있다. 폴 햄린 홀은 둥근 유리 천장을 지닌 철제 구조물로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휴식 시간에 식사를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 페이지에 들어가면 어떤 공연과 식사를 연계해서 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둥근 유리 천장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발코니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환상적인 요리와 함께 즐겨 보세요.”

어떤 여행안내서에서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발코니 레스토랑을 런던에서 ‘문화적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 톱 10 안에 포함된다. ‘문화적으로 식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음식 자체가 어떤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인지, 음식을 제공하는 장소가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인지, 아니면 공연을 보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총체적으로 문화적이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폴 햄린 홀의 한쪽 벽은 유리로 된 대형 엘리베이터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왜 저기에 매달려 있고, 사람들은 또 저기에 어떻게 들어갔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온통 거울로 되어 있는 벽면에 맞은편 철제구조물의 모습이 그대로 반사되고, 거기에 유리 박스 같이 생긴 것이 박혀 있어 마치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곳은 객석의 최상층과 연결되는 앰피시어터 레스토랑으로 아래층에서 보이는 곳은 벽의 일부이고, 그 앞으로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다고 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공연 외에 시민을 위한 실험과 교육의 장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공연 시즌 중에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데,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와 코벤트 가든 주변에서 활동했던 예술인에 관해 알고 싶다면 코벤트 가든 레전드 앤 랜드마크 투어(Covent Garden Legends and Landmarks Tour)에 참여하면 된다. 극장 안에서는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갔던 유명 오페라 가수와 무용가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으며, 극장 밖에서는 코벤트 가든 주변에 있는 유서 깊은 극장들을 둘러볼 수 있다.

오페라 극장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한 사람은 백 스테이지 투어(Backstage Tour)를 신청하면 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는 물론 현재 공연되고 있는 프로덕션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무대 장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 수 있는 투어이다. 백 스테이지 투어는 그날 공연작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이와 더불어 로열 발레 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객석에는 들어갈 수 없고, 오페라 무대 리허설도 절대로 볼 수 없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 즉, 건물 그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은 벨벳, 길트 앤 글라머 투어(Velvet, Gilt and Glamour Tour)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참여하면 객석에 직접 들어가서 극장의 역사와 건축이나 실내장식에 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투어는 객석의 최상층인 앰피시어터에서 시작한다. 보기에도 아찔한 꼭대기층이라서 8세 이하의 어린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대 장치나 의상에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한 서럭 투어(Thurrock Tours)도 마련되어 있다. 현재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의상 센터에는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2만여 점의 의상이 보관되어 있다. 악기도 있고 가구도 있다. 이 투어에 참여하면 오페라와 발레 공연에서 무대 디자이너의 구상이 어떤 과정으로 거쳐 무대 위에서 실현되는지 볼 수 있다.

극장 안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워낙 티켓 값이 비싸서 식사까지 한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왕 문화 체험을 할 것이라면 풀 코스로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극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이 어떨까 궁금해서 로열 오페라 하우스 레스토랑에 대한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았다. 친절한(?) 구글 번역기가 들려주는 고객 평가는 이랬다.

“두 코스를 가진 오페라에서 네 코스와 와인. 그것은 전설적이었습니다. 스톨스 써클에 있는 동료 후원자들이 마늘과 맺은 버터에 동의했는지는 궁금합니다. 직원은 걸출했습니다. 잘못을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리뷰를 보니 ‘전설적인’ 곳에서 ‘걸출한’ 직원이 가져다주는 ‘마늘과 맺은 버터’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다음에 한 번 더 가서 ‘마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 버터의 맛을 보아야 할까.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과연 그 맛에 ‘동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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