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형 제약사들이 벤처투자 강화에 나섰다.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신약개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전에도 일부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를 벌여왔지만 최근 그 투자 대상이 초기기업으로까지 확대하는 점은 눈에 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과 한독은 주주총회에서 회사 정관에 ‘엔젤투자’ ‘액셀러레이터 활동’ ‘바이오벤처 발굴’ 등을 사업 목적으로 신규 추가한다. 대웅제약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물론 투자조합(펀드)에 출자하는 방안도 사업 목적에 담았다. 매출 1조원이 넘는 대형 제약사 중 액셀러레이터를 사업 목적에 추가한 것은 대웅제약이 첫 사례다.
이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벤처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비용을 100% 부담해 신약을 개발하는 방식보다 벤처투자를 통해 기술을 보유한 신약 바이오벤처의 지분을 확보해 사업화한다는 전략이다.
두 회사가 일반 벤처투자에 비해 사업 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액셀러레이터 투자는 (같은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여러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만큼 파이프라인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어떤 바이오벤처에서) 신약개발 기술을 확보할지 모르는 만큼 초기 단계인 여러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펀드 출자를 사업 목적에 명시한 만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사업 목적에 벤처투자를 명시하지 않은 다른 제약사들도 벤처투자를 활용한 사업에 적극적이다. 직접 자기자본으로 바이오벤처의 지분을 획득하거나, VC펀드 출자뿐 아니라 직접 VC에 투자하는 방식도 활용한다.
제약 업계 매출액 1위 회사인 유한양행은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브릿지바이오·신테카바이오, IPO를 추진하고 있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의 성공적 투자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3·4분기 관계기업·공동기업 투자자산이 4,210억원, 장기투자자산 중 지분증권의 장부가액이 900억원에 이른다.
VC인 아주IB투자가 조성하는 1,200억원 규모 펀드에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유한책임투자자(LP)로 참여한 사례도 유명하다. 경동제약은 아예 VC 지분을 확보했다. 킹고투자파트너스의 주주로(지분율 17.1%) 이들이 만드는 펀드에 출자해 바이오벤처 지분을 간접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 회사에서 신약개발 조직을 분사한 뒤 R&D 비용을 VC투자를 통해 조달하는 전략을 활용하기도 한다. 동아제약에서 스핀오프한 메지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VC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신약개발 역량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성공한 바이오벤처의 지분을 (소수나마) 보유하고 있는지가 파이프라인 확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민석기자 se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