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서울 명동. 어스름한 새벽에 한 소년이 가게와 거리 곳곳을 다니며 품에 든 책자를 뿌리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직접 인쇄하고 손으로 풀을 붙여 만든, 어찌 보면 허술해 보이는 이 책자에는 당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던 경매일정과 알짜매물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국내 최초의 경매정보 업체 지지옥션의 초창기 버전인 ‘계약경제일보’였다. 당시 창업자인 아버지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을 도와 책자를 돌리던 열한 살의 강준(사진) 지지자산운용 대표이사는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지지자산운용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지도 벌써 10년이다. 이제는 어엿한 경영인이 된 그는 “어린 시절은 부모님으로부터 경매정보를 만들고 회사를 세우는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운 시간이었다”며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 큰 힘과 지혜가 된다”고 말했다.
◇윗주머니에 꼭 가죽 지갑을 넣는 이유=최근 서울 용산구 지지자산운용 본사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지지자산운용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경·공매 물건을 기반으로 한 자산운용업을 영위하고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위탁받은 투자금으로 100억~300억원 정도의 ‘꼬마빌딩’이나 상가 등을 경매 또는 일반매입 방식으로 사들인 뒤 물건의 가치를 높여 재판매한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경매를 통하면 통상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건물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 잘만 운용하면 높은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성과 노하우 없이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강 대표는 ‘명도집행’을 꼽았다. 그는 “지금도 명도집행을 나갈 때면 솔직히 겁이 난다. 불법 임차인들과 부딪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라며 “현장에 갈 때는 언제나 양복을 갖춰 입는데 한쪽 가슴 주머니에는 가죽 지갑을, 다른 쪽 주머니에는 스마트폰을 넣어둔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지자산운용의 부동산펀드 포트폴리오에는 그와 직원들의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지지자산운용 부동산 1호 펀드에서 낙찰받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건물. 시가는 99억원인데 낙찰가는 43억5,000만원으로 반값에 불과했다. 낙찰가가 이토록 낮아진 것은 50억원에 달하는 유치권이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유치권 중 가짜도 있다는 점이다.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신고만 해도 유치권을 설정할 수 있는 탓이다.
지지자산운용은 상계동 건물을 낙찰받아 50억원의 유치권이 가짜임을 증명했고 리모델링을 거쳐 수익성 좋은 건물로 탈바꿈시켰다. 회사가 투자한 홍대 상권에 있는 레스토랑 건물도 불법 임차인으로 인해 홍역을 치렀다. 당시 임대료도 체불한 채 불법으로 공간을 쓰고 있던 임차인이 나가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건물이 낙찰된 다음날부터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시작했다. 강 대표가 직접 나서 공사를 막은 후에야 임차인은 점거를 중단했다.
부동산 간접투자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이해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는 “국민 대부분이 부동산을 직접 사들이는 직접투자 인식을 갖고 있다 보니 생기는 해프닝도 있었다”며 “투자를 했는데 왜 등기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냐며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지분이 등기부에 표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협상의 스킬, 진실한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어렵게 건물을 손에 넣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남아 있다. 건물을 매입한 뒤 운영은 하청을 주는 통상적인 자산운용사와 달리 지지자산운용은 자산관리(PM)와 시설관리(FM)를 겸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매로 싼값에 건물을 낙찰받거나 좋은 조건에 건물을 매입해도 수익을 내려면 임대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강 대표는 임차인과 협상할 때도 대부분 직접 나선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면서 그는 “눈빛만 봐도 다음달 임대료가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알게 됐다”고 했다.
각양각색의 임차인들을 만나면서 그가 정립한 협상의 스킬은 단 하나, ‘진실’이다. 강 대표는 “우리도, 임차인도 진실하면 통한다”며 “우리도 협상에 임할 때 우리가 지원해줄 수 있는 것, 조정해줄 수 있는 임대료의 마지노선을 들고 간다. 임차인도 영업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 쫓아내고 임대료를 올리는 것만이 수익을 내는 길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들어갈 때는 임대료 못 낸다고 힘들어하던 곳도 링거를 꽂고 영업 활성화 전략을 고민하다 보면 영업이 잘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상업용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라고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1번도, 2번도, 3번도 임차인”이라고 강조했다.
펀드를 운용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로도 한 임차인과의 에피소드를 꼽았다. 강 대표는 “사업이 안 돼 힘들어하면서도 어떤 때는 자기 월급을 포기하면서까지 임대료를 내주시는 분이 계셨다”며 “펀드 만기가 다가와 부동산을 매각할 때 그분께 지금보다 더 낮은 임대료를 받으라는 조건으로 매수자에게 매각했다. 그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대형빌딩·지방시장도 공략=지지자산운용은 지금까지 부채 제로, 약 6개월 전까지는 공실 제로라는 거의 불가능한 실적을 유지해왔다. 강 대표는 “얼마 전 연면적 3,000평 건물에 30평의 공실이 발생해 아쉽게도 공실 제로 타이틀은 내려놓게 됐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안전성을 중시한 보수적인 투자로 업계에 ‘왕보수’로 통한다”고 웃었다. 그가 지금까지 내건 경영이념은 이러한 투자성향을 잘 설명해준다. 그의 경영이념은 바로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 같은 예리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소의 걸음처럼 신중하게 나아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올해는 10년째 유지해온 경영 슬로건을 ‘독시호행(禿視虎行)’으로 바꿨다. 독수리처럼 먹잇감을 빠르게 캐치해 호랑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의미다. 공격적인 투자를 선보이겠다는 다짐이다. 강 대표는 “사업 초창기에는 투자할만한 경매 물건은 많았는데 투자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매 펀드의 특성상 물건을 낙찰받는다는 담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부동산 간접투자에도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덕분에 초창기에 비해 투자자 모으기는 나아졌지만 문제는 마땅한 물건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라며 “투자금으로 건물을 구매해 투자하려 해도 건물주들이 별다른 투자처가 없으니 팔려고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4~5%의 수익률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올해부터 조금 더 과감한 투자에 나선다. 강 대표는 “과거에는 공실이 하나라도 있으면 투자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있더라도 우리가 공실을 채워 수익률을 내볼 계획”이라며 “기존에 투자해온 100억~300억원대 꼬마빌딩이 아닌 대형빌딩에 대한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수익형 부동산 투자상품의 경우 올해부터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로 확장할 것”이라며 “경매 펀드도 올해는 물론 해마다 한 개 정도는 상품을 꾸준히 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부동산 직접투자가 압도적인 국내 시장에서 간접투자가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가 직접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투자금이 적고 세금도 절약된다”며 “간접투자를 하면 투자만 하고 관리는 전문 업체에서 하기 때문에 훨씬 손쉽게 부동산 투자에 접근할 수 있다”고 간접투자의 장점을 강조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72년 서울 △고려대 경영학과·수학과 △건국대 부동산학석사 △연세대 공학박사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LG CNS 해외마케팅팀 △㈜지지옥션 기획팀장 △2018년~ 지지자산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