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전쟁發 증시 펀더멘털 훼손 우려, 중장기 전망 수정해야"

[코스피 4%대 폭락...전문가 긴급진단]
사스·신종플루 때 '단기급락 후 반등' 학습효과 안먹혀
실물경제 위축 현실화에 1,950 하방 지지선 의미 없어
"저가 분할매수할 때" "리스크 여전해 투자는 모험" 팽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자 주식시장은 맥을 못 추고 급락했다. 경기 침체에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급락한 국제 유가는 투자자들을 ‘패닉셀(공황 매도)’로 이끌었다. 증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조정받고 있는 증시의 회복 기간이 이전 예상보다 길어지고 중장기 전망도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19%(85.45포인트) 하락한 1,954.77에 장을 마쳤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이 가속화한데다 유가 급락에 대한 우려로 3%대 하락으로 시작했던 증시는 장중 한때 하방 지지선으로 여겼던 1,950선까지 위협받았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1조3,122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 개인투자자들이 지난 2011년 8월10일 이후 최대인 1조2,765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지수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급락에 대해 이전처럼 심리 위축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있음을 투자자들이 실제로 확인하자 투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스나 신종플루·메르스 확산 시기에 경험했던 학습효과로 이번 ‘코로나19’ 역시 단기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라는 기존 시각이 바뀐 셈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말 급락은 투자심리 훼손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실물경제에도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지난번 2,000선 붕괴는 과도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먼저 발병했던 중국의 지난달 구매관리지수( PMI)가 급락하면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실물경제에 깊숙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됐다”며 “미국이 갑작스럽게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유가가 급락하면서 기업들의 신용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30% 가까이 급락한 국제 유가는 투자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유가 하락은 제조업체의 생산 비용 절감 등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침체 우려가 더해지는 현재 상황에서는 주가 급락의 ‘카운터 펀치’가 됐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 하락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이슈는 아니지만 최근 상황에서 반가운 일은 아니다”라며 “경기 침체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원자재 생산 국가들, 개발도상국(이머징마켓)의 위기 발생 가능성이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펀더멘털 훼손 조짐이 보이면서 기존에 세웠던 전망과 예상들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최 센터장은 “애초 1·4분기 안에 해결되고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시나리오를 모두 생각했지만 이제는 2·4분기 경제 둔화 이후 펀더멘털 훼손 뒤 하반기에나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역시 이달 중 미국 등지에서도 확진자 수가 잡힌다는 가정이며 상반기 내내 영향을 준다면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 역시 “이제는 정상화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시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잠재 불안요소가 어디까지 변질할지 예상이 어려워졌고 기존 전망의 수정부터 진행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추가 하락 가능성도 높게 봤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는 코스피지수 하방 지지선을 1,950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펀더멘털 훼손 정도가 예상보다 더한 것으로 나타난다면 1,950선을 지켜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 센터장은 “1,950선을 하방 지지선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고 센터장도 “국내 증시는 오른 게 없어 하방 경직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변동성이 커지고 약세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저가 분할 매수 전략은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정 센터장은 “기본적으로 2,000선 아래로 빠지면 매수하는 전략은 유지할 수 있는 국면”이라며 “하지만 신용융자 등 투기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반면 이제부터는 투자 전략을 신중하게 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각국 정부가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려는 상황에서 안전자산도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며 “지금은 미래를 위해 투자 여력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도 “충분히 현재 수준에서 분할 매수를 할 수 있지만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서둘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모험”이라고 지적했다.
/박성호·심우일기자 junpar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