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주 특허청장
올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 배심원단이 한 특허소송에서 약 1조원의 배상금 지급 평결을 내렸다. 애플사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와이파이 특허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다. 특허침해에 대해 엄중하게 배상하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금액이다.
이 법원 판결이 확정된다면 특허권자뿐만 아니라 이 소송에 참여한 투자자들도 큰 수익을 얻게 된다. 특허권자가 위험 분산 차원에서 특허소송에 펀드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금융상품으로도 확고히 자리 잡은 지식재산권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지식재산 투자는 미국의 독무대였다. 1980년대 이후 친특허정책(Pro-Patent) 드라이브를 걸며 지식기반 경제를 선도한 미국에서 지식재산은 금융투자의 새로운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는 지식재산을 더욱 각광받는 투자처로 만들어줬다. 부동산·주식 등의 전통적 투자 시장이 위축된 후 그 대안으로 특허를 중심으로 한 지식재산 투자가 급부상한 것이다. 현재 북미 지역에 1,000억원 이상의 대형 지식재산투자펀드가 수십개에 이를 정도로 지식재산 투자는 활성화돼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양적으로는 세계 4위 규모의 특허출원을 하는 지식재산 강국이지만 지식재산 투자 면에서는 이제 걸음마를 떼고 있는 단계다. 과거 MP3플레이어의 원천특허를 개발한 우리 중소기업이 폐업위기에 처해 그 특허를 미국의 특허관리회사에 매각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대수익을 날린 것이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무역수지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현실은 지식재산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변화의 싹도 감지된다. 우리나라의 한 특허관리회사는 국내 연구소가 개발한 특허를 매입하고 이를 침해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에 특허소송을 제기해서 1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받아냈다. 특허에 투자하는 민간 투자펀드도 결성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동영상 표준특허에 투자하는 펀드가 1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한 사례도 등장했다.
시중 유동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일부 투기성 자금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보인다. 생산적 투자처로서 지식재산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자리 잡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조만간 ‘지식재산 금융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올해 글로벌 혁신지수의 테마 역시 ‘지식재산 금융’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이 부동산·미술품 등 전통적인 유형자산뿐만 아니라 지식재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도 활발하게 부를 창출하는 날이 곧 다가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