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여는 수요일] 늘봄

- 윤이산


맞은편에서 남녀 한 쌍이 걸어온다. 잡은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두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걸어온다. 흔들리는 두 손의 리듬에 맞춰 절름거리는 남자의 다리가 발림을 넣으며 따라온다. 공원 산책길이 이팝 꽃을 뿌려 주고 명지바람도 거든다. 얼핏 스치며 보니 남자는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키가 몽총한 여자는 화상 흉터가 한쪽 눈두덩을 덮고 있다. 한 쌍의 초로(初老)가 지나간다. 팔다리 여덟이, 아니 사십 개 손발가락과 두 통의 머리가, 아니 그 밖의 부속품들까지 혼연일체, 한 덩어리가 되어 지나간다.

두 사람은 똑같이 봄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평생 봄이라는 단벌만 입고 살아갈 것 같았다.


얼핏 보셨다더니 단박에 샅샅이 꿰뚫어 보셨어요. 봄꽃이 손잡고 오듯 하나가 되어 걷고 있었죠. 맞아요, 우리는 평생 봄이라는 단벌만 입고 살아왔죠. 그러나 신이 준비한 계절은 넷이었죠. 봄옷 하나로 여름 불볕과 가을 서리와 겨울 눈밭을 건너왔어요. 용케 봄에 봄옷 입은 우리를 보신 거죠. 서로 부족하니 손을 꼭 잡고 걸었어요. 연리지가 서로의 물관과 체관을 공유하듯 우리는 나의 좌심방부터 그의 우심실까지 함께 쓰죠. 긴 세월 절름거리니 그도 춤이 되더군요. 화상과 동상 입으며 계절을 넘다 보니 이제는 어딜 가도 봄이더군요. 손 내밀어 보세요. 당신도 함께 걸을래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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