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치킨게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유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이 10일 무더기로 원금손실구간(konck-in·녹인)에 진입했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물 선물 정산가격이 이날 새벽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31.13달러로 결정되면서 WTI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가 DLS에서 무더기로 녹인이 발생했다.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은 각각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DLS가 녹인된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통보했거나 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1조원이 넘는 유가 DLS 중 약 20%인 2,000억원가량의 DLS가 녹인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WTI가 포함된 DLS들은 지난해 유가 50~60달러선에서 발행됐기 때문에 녹인 가격대가 대부분 30달러 안팎에 몰려 있다. 일반적으로 녹인 가격대(배리어)는 발행 시점 기초자산 가격의 45~55%선에 결정된다. 특히 지난해 3~4월과 12월 WTI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을 때 발행됐던 DLS들에 ‘녹인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발행된 한국투자증권트루(DLS)1601·1602호는 WTI 발행 기준가가 62.7달러, 녹인 수준은 50%인 31.35달러였다. 그런데 10일 새벽 WTI의 정산가격이 31.13달러로 정해지면서 간발의 차이로 녹인이 발생했다.
반면 녹인 가격대가 아직 28~30달러선에 걸쳐져 있어 아슬아슬하게 녹인을 면한 DLS도 다수다. 삼성증권DLS 2978호의 경우 녹인 가격이 30.9달러로 이날은 간신히 원금손실을 면한 상태다. 유가가 이날 33달러대로 반등하기는 했으나 워낙 유가 변동성이 큰 상태여서 언제든 대거로 추가 녹인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DLS나 주가연계증권(ELS)이 녹인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원금손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녹인 여부가 중요한 것은 기초자산(유가·주가지수)의 가격이 많이 떨어져도 녹인만 되지 않으면 만기 시점(3년)에 원금과 수익률을 챙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60달러대에 가입한 DLS라도 녹인만 피하면 만기 때 유가가 40달러까지 떨어진다 하더라도 원금과 3년치 수익률(연 5~9%)을 한꺼번에 받는다. 그러나 녹인이 되면 만기까지 버티더라도 원금손실 가능성이 커진다. 3년 만기 DLS의 경우 일반적으로 6개월에 한번씩 조기상환의 기회가 돌아오는데 녹인이 발생하면 가입 당시 유가의 75~90%를 넘어야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미상환 DLS들은 장기적으로 유가가 45~ 50달러를 넘어야 손실을 면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유가 전망이 상당히 불투명하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녹인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지금 환매해 손실을 확정 짓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유가 상황을 지켜보는 쪽을 투자자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