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미국 유학시절의 김동성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제국의 수도 런던 백일동 221번지. 하숙생 이름은 한정하와 조군자. 한 명은 직업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괴짜. 또 한 명은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만들고 상이군인으로 돌아온 군의관 출신 구직자.
처음부터 단짝이었던 것은 아니다. 룸메이트를 구하다 운 좋게 같은 하숙집에서 살게 됐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조군자는 미처 몰랐다. 놀라운 모험의 세계가 펼쳐질 줄은. 한정하를 따라다니며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기록해나갈 줄은. 다만 아름답고 환상적인 나날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리얼리티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 셜록 홈스와 의사 존 왓슨. 두 남자의 이야기는 40년에 걸쳐 60편이나 이어졌다. 급기야 상상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실존인물로 대접받기도 했다. 그러다 먼 조선까지 건너와 한정하와 조군자로 둔갑했다. 베이커가 221B라는 주소가 백일동 221번지로 바뀐 것처럼. 아직 코난 도일이 살아 있고 셜록 홈스와 존 왓슨도 한창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1916년 미국에서 출간된 김동성의 에세이집 ‘동양인의 미국 인상’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을 조선으로 데려온 것은 미국 유학생 출신 김동성이다. 개성에서 삼대독자로 태어난 김동성은 시대의 대세를 거슬러 일본 대신 중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인도양과 대서양을 가로질렀다. 19세에 미국 땅을 밟은 김동성은 대학에서 농학과 교육학을 공부하고 미술학교를 다니며 만화라는 것을 배웠다. 오랜 고학 생활의 와중에 ‘동양인의 미국 인상’이라는 책도 썼다. 미국에서 조선인이 영어로 책을 내기는 처음이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번역한 김동성의 ‘붉은 실’
김동성이 10년 만에 돌아왔을 때 고국은 사라지고 남의 나라 말을 쓰는 식민지가 돼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난 뒤 김동성은 동아일보 창간에 뛰어들고, 1921년 뜻밖의 연재소설을 선보였다.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이 처음 만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첫 번째 작품 ‘주홍색 연구’, 고지식하게 옮기자면 ‘진홍색 습작’이 바로 ‘붉은 실’이라는 제목으로 출현한 것이다.
한정하와 조군자로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인지 명탐정과 의사 콤비는 조선인 독자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드디어 식민지에서도 탐정이라는 기묘한 직업, 앉은자리에서 눈과 머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한 맛, 살인마를 가려내는 숨 막히는 오락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나쁜 놈을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왜 죽였는지, 어떻게 숨겼는지 알아내면 그만이다. 그런 일을 이야깃거리로 삼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니.
그렇다 해도 조선에서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의 후예가 등장하거나 경성을 무대로 멋진 활약을 펼쳐 보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추리소설은 1930년대에야 가까스로 꽃피는 것처럼 보이다가 끝내 일제를 미화하는 첩보물로 타락하고 말았다. 탐정을 자처한 주인공들은 셜록 홈스가 아니라 한결같이 마초 괴도 아르센 뤼팽을 추앙하고 흉내 냈다.
어쩌면 추리소설이 싹트고 무럭무럭 자라날 만한 밑거름은 골고루 갖춰져 있었는지 모른다. 구한말의 부패와 혼란, 낯선 문물의 홍수, 급변하는 사회질서와 제도, 그 속에서 들끓기 시작한 개개인의 욕망들. 게다가 그 모든 변화가 3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뒤엉켰으니 갈피갈피마다 범죄와 탐정의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문제는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였다는 데 있다. 인도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셜록 홈스가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존 왓슨이 조선에 오더라도 성실하고 모범적인 신사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식민지 독자들은 과연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할 것인가.
살인이야 언제 어디에서고 벌어지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범죄의 위협에서 벗어난 곳,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시민의 일상과 안녕이 지켜지리라는 믿음, 합리적 이성과 논증으로 진실이 파헤쳐지리라는 기대가 없다면 추리소설은 숨 쉴 수 없다. 그러니 추리소설이 널리 읽히는 곳일수록 더 건강하고 민주적인 사회다. 식민지나 독재체제는 단연코 그런 시공간이 아니다.
강제병합 이후 골목골목을 지키며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른 것은 헌병이다. 교실에서는 제복 입은 교사가 칼을 차고 수업했다. 3·1운동이 막 휩쓸고 지나간 1921년,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는 제국의 법률과 치안을 조롱하는 한정하와 조군자마저 때려잡아야 할 불령선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1921년 호놀룰루 만국기자대회에 참석한 김동성(오른쪽).
김동성은 한정하와 조군자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붉은 실’에는 단편소설 4편이 더 번역돼 실렸다. 그런데 하와이에서 열린 만국기자대회에 김동성이 참석하게 됐다. 나라 없는 민족의 신문기자가 처음 초청받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내친김에 워싱턴에 가서 태평양군축회담을 취재하기로 했다. 어쩌면 식민지 조선의 운명에 희망을 걸 수 있는 마지막 담판일지도 몰랐다. 100일 만에 경성으로 돌아온 김동성은 더 이상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을 꿈꾸지 못했다.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