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의 휴일’에는 공주 역할을 한 오드리 헵번이 그레고리 펙과 함께 서민들처럼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전후 피폐해진 경제 여건으로 자동차가 아니라 스쿠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아야 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피아트의 경영진은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며 도심에서 타고 다닐 만한 경제적인 소형차를 만드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래서 선보인 차가 길이 3m에 연비는 22.2㎞/ℓ로 스쿠터와 비교될 만큼 실용적인 ‘친퀘첸토(Cinquecento)’였다. 친퀘첸토는 이탈리아어로 숫자 500을 의미하는데 초기 버전의 배기량이 500㏄여서 ‘피아트 500’으로도 불린다.
1957년 등장한 피아트 친퀘첸토는 도시형 자동차로 작고 앙증맞은 디자인까지 어우러져 출시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때마침 제2차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유럽 전역에 걸쳐 소형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1899년 창업 당시부터 ‘자동차는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동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피아트로서는 구세주를 만난 격이었다.
친퀘첸토는 60여년에 걸쳐 다양한 모델로 바뀌었지만 ‘이탈리아 국민차’로 불릴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1950년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촉발된 이탈리아의 경제 부흥기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탄생 50주년에 신모델이 출시될 때는 ‘웰컴 반비나’라고 해서 TV를 통해 이탈리아 전역에 생중계됐을 정도다. 이탈리아어로 ‘사랑스러운 아가씨’라는 뜻의 반비나는 당시 최고의 유행어에 올랐다. 친퀘첸토는 독특한 모양으로 다양한 예술작품에 소개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루팡 3세’에서 괴도의 애마로 나오고,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여자’에서는 주인공의 자동차로 등장한다.
피아트가 최근 전기자동차로 변신한 친퀘첸토 신모델을 선보였다는 소식이다. 회사 측은 불가리,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와 손잡고 마니아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겠다는 계획이다. 피아트가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화려한 부활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