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한국노총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노총이 최근 산하 노조에 초기업 산별노조로의 대표성 강화·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플랫폼 종사자 노조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임금 및 단체협약 지침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인상분을 일부 희생해 비정규직의 처우 향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라는 구체적인 방안도 포함됐다. 민주노총에 ‘제1노총’ 지위를 뺏긴 한국노총이 본격적인 조직경쟁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기존의 노사정 협의 틀과는 별도로 민주노총과 개별적인 노정 협의 회동을 갖기로 하면서 한국노총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경제가 한국노총의 올해와 작년 공동임단투 지침을 비교 분석한 결과 올해 공동임단투 지침에는 ‘노조할 권리 강화를 위한 노동조합 대응방안’이 단체교섭 주요쟁점과 대책에 포함됐다. 이는 지난해 임단투 지침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세부 대응 과제로는 △ILO 핵심협약 비준 투쟁 △초기업 산별노조로의 대표성 강화 △비정규직, 플랫폼 종사자 등 특수고용근로자를 위한 연대교섭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해에는 별다르게 강조하지 않았던 ILO 핵심협약 비준과 산별노조 구성에 대한 내용이 대폭 늘었다. 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ILO 핵심협약 관련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특수고용근로자·간접고용근로자의 노동기본권 △노조설립신고제도 개선 등이 누락됐다고 지적하고 올해 ILO 핵심협약 비준과 법제도 개선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초기업 산별노조에 대한 계획은 더욱 구체적이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산별이 아닌 기업별 노조의 단순 연합체인 ‘연맹’ 형식으로 운영돼 왔다. 한국노총은 산별로의 전환이 대기업노조의 반대를 부를 수 있으므로 “같은 산업 내에서 유사한 근로조건과 노조활동을 중심으로 소산별 단위로 묶어 초기업단위 교섭을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민주노총과의 경쟁에서 밀렸던 비정규직·특수고용 근로자 조직화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산별노조 설립의 목적은 산업별 노사 교섭으로 대기업·중소기업·하청 근로자에 대한 일괄적인 처우 개선이 가능해진다는 이점이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그동안 단결권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특수고용 근로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의 성격이 강하다. 이 외에도 한국노총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해 적정소득·보험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에 대해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고 공제조합을 만들어 이해대변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비정규직·하청 근로자들을 위해서는 ‘총 임금 인상률 7.9%를 요구하되 2.2~2.6%를 노조에서 분담해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노총의 위기감은 서두에서부터 드러난다. 한국노총은 “사상 최초로 노총의 조직 규모가 민주노총에 밀리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2020년 말 발표된 ‘2019년 노조 조직현황’에서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현 정세를 파악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의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 날 만날 예정이다. 두 사람의 회동은 지난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안이 부결된 이후 처음이다. 물론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날 이 장관과 회동하며 정부와 양대노총이 만난다는 구색은 갖췄다.
하지만 지난 10일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극복 노정협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고 제안한 후 고용부가 응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사노위라는 기존의 사회적대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노정교섭을 하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장관과 김 위원장의 만남에 이목이 쏠릴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동계의 협조를 구한다는 뜻일 뿐”이라며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기본 틀이라는 입장에는 변함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한국노총의 조직화 성과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민주노총도 대기업 노조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지 못해 산별노조 변화에 사실상 실패했다”며 “산별노조 변화는 미래 노사관계의 ‘초석’을 깔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