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샌더스의 위험한 도박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샌더스 '슈퍼 화요일'서 대패
'오바마 절친' 광고로 반전 시도
정치철학 관점선 교집합 전무
타협 없는 맥시멀리즘 버리고
점진적 진보주의 선별적 수용을

폴 크루그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는 네바다 코커스에서 확실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지만 ‘슈퍼 화요일’ 경선을 통해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정치 운동 가운데 샌더스의 캠페인만큼 짧은 시간에 극적인 추락을 경험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네바다 코커스에서 슈퍼 화요일까지 단 열흘 사이에 샌더스는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에서 경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탈락 예상후보로 자리바꿈했다.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자 그는 자신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절친’인 양 묘사한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팩트체크 담당자들은 샌더스의 광고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10년에 걸쳐 행한 발언들을 중요한 앞뒤 맥락을 잘라낸 채 짜깁기한 영상으로 유권자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광고 영상의 프레임별 분석은 자신을 오바마와 연결하려는 샌더스의 시도가 정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다. 정치 철학으로서의 샌더스주의(Sandersism)는 오바마주의(Obmaism)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다시 말해 샌더스는 ‘반 토막의 빵일지라도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는 오바마의 점진주의적 정치학을 거부하는 대신 일체의 타협을 배제하는 위험천만한 맥시멀리즘(maximalism)을 요구한다.

오바마는 점진적인 변화로 진보적 목표에 도달하려 했다. 오바마케어는 기존 보험가입자들의 생활에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의료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폭으로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인상했다. 지난 2016년까지 1%의 경제 최상위층에 적용된 평균 연방세율은 레이건 행정부 출범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포퓰리스트들의 수사를 동원하지 않은 채 이 모든 일을 조용히 처리했다.

샌더스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점진적이고 절제된 접근법은 용기 부족을 의미한다. 그는 오바마가 악착같이 전 국민 메디케어제를 법제화했어야 했고 백만장자들과 억만장자들에 대한 세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소득 불평등을 정면으로 공격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오바마가 일부 주요 쟁점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2009년 필자는 미흡하기 그지없는 오바마의 경제부양책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당시 필자는 그의 부양책이 정치적 재앙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왜냐하면 그의 경제부양 실패가 공화당의 노림수였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은 지속되는데 오바마가 공화당의 긴축재정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을 때도 화가 복받쳤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필자는 지금도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막대한 구조금융을 제공한 대가로 두어개의 대형은행을 법정관리로 돌렸어야 했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은행가들에게 지나치게 공손했다.

그러나 샌더스는 일부 쟁점 사안에 대해 오바마가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어야 했다는 식의 선별적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는 모든 전선에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는 맥시멀리스트 어젠다를 옹호했다. 민간보험의 완전한 제거,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에 증세를 요구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확대 등이 그것이다.

맥시멀리즘의 뒤에 자리한 정치 이론은 이렇다. 먼저 대담한 포퓰리스트 프로그램으로 근로계층에 속한 백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 신규 지지자들을 대거 확보함으로써 11월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의회의 중도주의자들을 협박해 과격한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정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없다. 특히 그가 공언했던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는 슈퍼 화요일에서 현실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남은 민주당 경선을 통해 샌더스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샌더스주의는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다. 심지어 바이든 같은 당내 ‘중도주의자’조차 바로 얼마 전까지 극좌파 정책으로 간주됐던 오바마케어의 대대적인 확대를 지지한다.

필자는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포퓰리스트들과 너무 쉽게 타협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점진주의가 지레 겁먹고 먼저 타협을 시도하는 ‘사전 투항’으로 변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샌더스는 여전히 타협 없는 맥시멀리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필자는 모든 정치적 타협을 배제하는 샌더스의 전략이 그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감정적 호소력을 지닌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전후좌우를 둘러보지 않고 위험천만한 ‘올인’을 고집하는 사람은 결국 파산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