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다면 그 시작은 이탈리아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상업활동 중단이 가뜩이나 유럽 내 최약체로 꼽히는 이탈리아 은행의 자본잠식과 그로 인한 경제 둔화를 부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1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탈리아의 은행들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취약한 금융기관으로 여겨졌는데, 다른 유럽 은행들보다 완충자본(capital cushion)은 빈약한 반면 부실대출은 두 배 이상 많다”며 “이 은행들은 이탈리아의 부채 2조4,000억달러(약 2,928조원) 중 약 4분의1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만5,000명을 넘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특히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북부지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다 11일 최소 2주간 약국과 식료품점을 제외한 모든 상점에 휴업령을 내리면서 경제적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WP는 “상업활동 중단으로 자금난에 처한 기업과 가계가 은행 대출금 상환을 중단하고, 동시에 은행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채 가치가 떨어지면서 은행 자본이 잠식되고 대출이 위축돼 경제가 더욱 둔화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탈리아의 금융시장 상황은 이미 충격에 흔들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중순 이후 미국과 독일의 차입원가는 하락했지만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은 상승했다. 이탈리아 증시의 하락률도 다른 유럽 국가보다 크다.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UniCredit)의 주가는 한 달 동안 39% 하락했다. 이탈리아의 개인 평균수입도 20년 전보다 많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250억유로(약 34조원)의 긴급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만큼 올해 이탈리아 국가부채는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135%(GDP 대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지난해 이탈리아의 위기가 글로벌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미온적인 대응도 우려를 낳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이 우선 대응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되고 재정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와 모든 정책기관은 적절하고 목표가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시장은 재무가 취약한 유럽 국가들의 재정정책을 압박하는 라가르드 총재의 이 같은 발언에 혼란을 느끼면서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