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할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진단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전 세계 각국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한국과 외교 마찰을 일으킨 일본 역시 최근 질본에 검진 관련 문의를 보낸 것으로 확인돼 ‘앞뒤가 다른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정부 당국과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국·프랑스를 비롯해 미주·유럽·동남아시아·중동 등 10개 이상의 나라가 한국 질본에 진단 시스템, 감염자 관리, 치료센터 구축 등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해당 국가들 가운데는 외교부를 통해 정식 요청을 보낸 나라도 있지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지역공동체를 활용하거나 보건당국자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경우도 있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진단 시스템을 배우려는 각국의 수요는 굉장히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파악이 안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에 진단 관련 연락을 취한 국가 중 한국과 외교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 외교부나 보건복지부에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자국의 국제보건규약(IHR) 국가연락담당관을 통해 질본에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질본 측에 한국의 검진현황과 검진기관 수 등을 물어본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이달 초 WHO에 “코로나19 우려국으로 한국과 같이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한 것을 비롯해 지난 5일 한국인에 대해 선제적으로 입국제한 조치를 내린 점 등을 감안하면 일본 보건당국의 이 같은 행동은 다소 모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은 1월 비슷한 시기에 첫 확진자가 나왔지만 한국이 지금껏 22만명 이상을 진단하는 동안 일본은 검진인원이 1만여명에 그칠 정도로 저조한 실정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공식 외교 채널로 진단 관련 문의를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연합뉴스
세계 각국이 선진국을 막론하고 앞다퉈 한국 질본에 구원 요청을 보내는 것은 코로나19가 팬데믹 상태로 돌입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질본을 중심으로 초기 감염국 중 가장 빠르고 투명하게 검진을 진행하고 있어 하루 1만건 이상의 진단 비법을 배우려는 후발국들의 문의가 점점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도쿄올림픽 연기·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일본 역시 내부 비판 여론에 더 이상 적극적인 검진을 미룰 수 없게 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질본은 현재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은 만큼 각국의 요청에 적극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역에 대한 국제공조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국내 확진자가 확연히 안정세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인적·물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질본 관계자는 “현시점에서는 국제학술지를 통해 진단 방법,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등의 자료를 공유하는 수준으로만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경환·박우인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