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자동차에서 예능까지 두 개의 심장 이라는 문구가 한 때 유행이었다. 문득 그 말이 요즘 직장인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들을 보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넘어 동등한 두 개의 직업을 가지려는 움직임을 목격하며.
주 52시간 근무로 직장인들에게는 남은 116시간이 생겼다. 이를 어떻게 쓰는가가 관건이고, 도전의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 일에 쫓기다보면 마음만 크고 실행은 쉽지 않은 법. 그런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완벽하게 두 개의 업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낮엔 게임 기획자로, 밤엔 한글 디자이너라는 그만의 독특한 직업으로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무경계 워크맨 이윤채씨. 에너제틱한 그녀의 삶은 정말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듯 보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듣고자 성수동 신촌살롱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지금의 게임 회사가 첫 직장인가?
"대학원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차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에 다닌 게 첫 직장이었다. 기관에서 정책 보고서 쓰는 일을 했는데 도저히 맞지가 않더라."
- 공공기관,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았나?
"초반에는 의욕이 넘쳤다. 실제 사업을 꾸려 테스트를 하고, 문화 교육을 시켜서 그 효과들을 입증하는 보고서를 열심히 썼다. 그런데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것들에 조금씩 지쳐갔다. 문화 교육이라는 건 단기간에 효과가 나오기 어려운 영역인데. 2년 후 퇴사했다."
-게임 회사에 지원하고 싶었던 이유는?
"게임을 즐겨 하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전에는 MMORPG 게임보다는 닌텐도 등 캐주얼한 게임을 즐겨 했다. 하지만 기획자 역할을 하고 싶었으니 소재가 무엇이든 결은 비슷하겠다 싶었다. 모르면 공부하면 되는 것이고."
- 처음부터 잘 적응했는지?
"당연히 아니었다. 처음부터 난관이 찾아왔다. 첫 회의를 들어갔는데 대화의 절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단어를 써야할지 모르겠더라. 그 안에 끼기 위한 사투를 시작해야 했다."
- 어떤 노력을 했나?
"매일 회의 내용을 녹음해 출퇴근 시간 2번씩 들었다. 나만의 게임 용어집을 만들며 공부했고. 그렇게 1년 반 정도 지독하게 알아갔다. 그렇게 파고 들다 보니 프로젝트 매니저보다 UI/UX 기획이 잘 맞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 프로젝트 매니저와 UI/UX 기획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프로젝트 매니저는 넓은 관점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일정관리 등 매니지먼트 역할이 크다. 기획자는 뭔가를 만들어 결과물을 내는 직군이다. 기획한 것들을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하고 결과물을 확인한다. 게임의 코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역할이다."
- 지금 일은 적성과 잘 맞나?
"잘 맞는다. 만족도도 높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 업무와도 잘 맞고. 그리고 기획용 문서 만드는 걸 매우 좋아한다. 게임 기획서는 방향과 디테일이 중요하다. 텍스트만으로 전달이 어려운 부분들을 동료들에게 잘 전하기 위해 내용을 시각화 하는데 집중한다."
- 전공은 무엇이었나?
"학부 전공은 경영과 무역학. 이후 국제대학원에 진학 했는데 일주일 다니다 바로 접었다. 그러다 당시 미디어 파사드에 관심이 많아져서 리서치 하던 중 미디어 아트라는 전공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상학 쪽으로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
- 갑자기 영상에 관심이 생긴 것인가?
"사실 어렸을 때 음악과 미술을 오래 배웠다. 플룻을 10년 정도 했었고, 미술도 꽤 오래 했다. 그런데 플룻 유학을 준비하던 중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고, 취직이 잘 될 수 있는 공부 쪽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다시 좋아하던 쪽으로 움직이게 됐다."
<필사로 시작된 손 글씨>
-손 글씨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공공기관 다닐 때 늘 칼퇴를 했다. 너무 정적인 일만 하다 보니 뭔가로 해소하고 싶었고. 그러다 필사를 시작했다. 손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이어졌다."
- 글씨의 재능이 있었나보다.
"전혀 아니다. 어렸을 때는 악필이었다. 글씨를 진짜 못썼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글씨를 크게 써보라며 전용 공책을 사오셨다. 이리 저리 써보니 조금씩 나아졌다."
- 필사에 디자인을 더하게 된 계기는?
"필사를 하며 국내외 작가들의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러다 관심 있는 작가들도 생겼고. 그분들이 쓴 책을 보며 독학으로 배워나갔다. 쓰다 보니 단순히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보다 글씨에 감정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필사를 할 때 그런 노력으로 이어졌다."
- 나만의 것으로 발전한 순간은?
"IT 기반 회사를 다니니 아날로그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모든 걸 기술로 처리하니 기억력이 떨어지더라. 뭔가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집중하는 방식으로 쓰게 되었다. 이전에는 시간이 남아 썼다면 이후엔 다른 목적으로 변해갔다. 어느 순간 글씨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
- 나에게도 재능이 있구나 라고 느낀 지점은?
"점점 지인들이 좋다는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글씨를 디자인으로 발전시켜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고."
-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퍼는 이미 대중적이지 않았나?
"이미 유명하고 대중적이었다. 다만 내가 쓰는 글들이 그거에 맞는 형식인가에는 의문이 있었다. 필사의 과정이라고만 여기기도 했고. 기술적으로 잘 쓰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러다 주변 분들이 뭔가 ‘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 점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떻게 다른 ‘각’일까?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배워서 쓴 글씨가 아닌 것 같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수업을 들으며 배운 게 아닌 내 감정에 따라 써 가며 만들어간 것이니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서 뭔가 나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되었다."
-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캘리 수업이나 책을 보면 가르쳐 주는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기술적으로 잘 쓰는 방법을 알려 준다. 자음과 모음의 간격, 획의 굵기, 받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등. 그런데 나는 형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의 감정의 흐름을 기반으로 쓰다 보니, 어떤 스타일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 감정의 흐름은 글씨로 어떻게 이어지나?
"만약 지금 있는 공간의 타이틀을 써야 한다면, 이 공간에 대한 스터디부터 시작한다. 공간에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손님들과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떤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상상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연상되는 나의 최종 이미지를 글씨로 옮긴다."
- 이윤채 손 글씨의 핵심, ‘감정’이겠다.
"그렇다. 내가 쓴 글씨를 사람들이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쓴다. 글씨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비가 오는 느낌이다.’, ‘바다를 보는 것 같다.’ 이런 식이다."
- 영향을 받은 다른 장르가 있나?
"대학원 때 타이포그라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키네틱 타이포 장르를 좋아했고. 글자의 움직임을 연구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프로’로 글씨를 쓰기 시작하다>
- 본인의 브랜드를 걸고 한 첫 작품은 무엇인가?
"SM타운 콘서트 소개 영상에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모션 그래픽 감독님께서 제안해주셨다. 정형화 되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좋다 하시더라. 그렇게 첫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 반응이 좋았나?
"신기하게도 바로 다음 일이 들어왔다. 샤이니 종현씨의 콘서트 영상이었다. 이후 미스코리아 시상식 영상에 나오는 작업, 옥수수 티비에서 만든 국가 화장품 수사대 작업도 했었고. 현대무용단 고블린 파티, 가게 간판이나 영어 학원 작업 등 두루두루 하게 되었다."
- 제품 브랜드와도 진행했었나?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카누, 일룸과도 진행했다. 광고나 제품으로 노출 되니 많이 알아봐 주셨다. 기억에 남는 건 배우 김성령씨의 자선바자회 포스터 제작. 의미 있는 행사에 재능기부로 동참할 수 있었다. 판매 수익은 기부하는데 썼다."
- 직업으로서 글씨를 쓴다, 어떤 기분인가?.
"이윤채라는 브랜드를 찾는 회사나 개인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점점 직업인으로서 퀄리티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취미의 영역을 넘어 나의 가치나 쓸모가 중요해짐을 느꼈다. 취미는 자기만족 이 중요하지만, 직업은 클라이언트나 소비자의 만족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 직업이 되니 어려운 점은?
"기준을 정해야 하더라.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때까지 한다고 해도 시안을 50개씩 만들거나 수정을 20회씩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때부터 나만의 방식들을 고착화 해갔다. "
- 손 글씨를 쓰는 직업, 장단점은 무엇일까?
"장점은 혼자 하니 시간 쓰기가 자유롭다는 것. 그저 나와의 싸움이다. 단점은 수익화의 어려움. 아무래도 꾸준히 일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보니 그 지점이 늘 애매하다. 누구나 쓸 수 있기에 그 가치를 낮게 보는 경우도 많다."
- 오히려 직업으로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 아닌가?
"자기만의 색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것 같다. 나도 아직 찾아가며 고민하는 중이고. 그런데 이 부분은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이지 않겠나.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씨지만 그것을 ‘그리기 위한’ 고민의 과정이 필요할테고. 그 과정을 잘 밟아야 나만의 색이 나올 것이다."
- 쓰는 글씨가 아닌, 그리는 것의 의미는?
"결국 나만의 스타일은 살리면서 작품마다의 특징을 잘 녹이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글씨를 쓴다 생각하지 않고 그린다의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센스나 감각도 장착해야 하고."
- 디자이너의 개념인 것 같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 SNS에 외국인 분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내가 쓴 한글을 이해해서 라기 보다는 그 디자인에 공감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브랜드와 비즈니스 모델>
- 어떤 넥스트를 준비 중인가?
"우선 내 브랜드를 많이 알려야 한다. 어느 정도 고착화된 시장이기에 확장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일단 온라인 교육 수업을 생각 중이다."
- 그게 비즈니스와 연결이 될까?
"아무래도 현재의 작업이나 굿즈 판매만으로는 수익화가 어려울 테니까. 교육 시장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향상이 중요한 시점이다."
- 강의 커리큘럼은 어떤 방향인가?
"잘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싶진 않다. 이미 그런 강의는 충분히 많고. 사고의 방식을 다른 차원에서 알려주고 싶다. 결과물도 종이에 한정 짓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쓴 글씨로 제품화 하거나 3D 기술 등을 통해 입체 결과물을 만드는, 매체를 넘나드는 풍성한 영역을 제공하고 싶다."
- 잘 쓰는 법과 어떻게 달라지나?
"감정을 담아 입체적으로 표현해보는 것. 오감을 넘어 육감을 깨우치는 수업. 나 역시 악필인 사람이었고 정형화 되지 않은 느낌으로 시작했으니까.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고 싶다."
- 성인 대상 교육으로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어린 친구들에게 감성이나 표현 방식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머지 않는 미래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다. 방과 후 취미활동도 다양해졌으니 도전해 볼 영역이지 않겠는가. 이런 교육이 대중화 돼 사회에 좋은 가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비즈니스 모델도 구상중인가?
"단순 작업, 굿즈 판매, 수업 등으로 국한하고 싶진 않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래서 내 브랜드 가치에 더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 본인만의 비즈니스 모델은?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찾으며 내 브랜드를 강화 및 확장 하는 것. 그 과정을 올해 만들어가야 한다. 정형화 되지 않은 작가, 뻔하지 않은 작가라는 강점을 기반으로."
<두 개의 심장을 유지하는 법>
-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나?
"굉장히 쪼개 쓰는 편이다. 직장생활이 여유 있는 곳도 아니고 야근도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사 점심시간을 주로 활용한다. 회사 식당 테이크 아웃 코너를 이용해 식사 시간을 아낀다. 하루가 24시간이라 아쉬울 뿐이다."
- 어느 한쪽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오히려 디자이너로 두 번째 직업을 시작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 그 시점을 잘 잡아야 할 테고. 올해가 여러모로 중요한 시기다."
- 회사를 놓기가 아직은 쉽지 않겠다.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월급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이건 나 말고도 많은 직장인들이 수긍하는 지점이지 않을까. 지금의 일을 하면서 내 브랜드를 잘 쌓아가고 싶다."
- 디자이너로서 어떤 차별화를 지향하는가?
"결국 나만의 개성과 매력이 있다는 것. 그게 다른 분들과의 차별화이지 않을까. 보여주는 방식이나 매체의 다양화도 그렇고. 종이가 아닌 모션 그래픽, 미디어 파사드 등 매체 다각화도 시도 중이다."
- 무한도전, 무경계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렇다. 뭐든 나의 글씨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싶다. 영역과 콜라보 불문 욕심이 많다. 나는 늘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해왔다. 결국 이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것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그러다보니 점점 무경계의 영역을 지향하게 됐다."
<한글 디자이너로서의 지향점>
- 한글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사실 캘리라는 표현은 어떤 특정 영역에 머무는 느낌이다. 글자를 재료로 쓰며 보다 다양한 결과물을 만드는 영역으로 가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좋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한글을 나만의 손 글씨로 어떻게 잘 표현할지 매일 고민하기도 하고."
- 한글에 보다 집중하는 이유는?
"사실 영어는 어떻게 써도 예뻐 보인다. 그런데 한글은 참 쉽지 않다. 어려운 과제이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글의 감정을 잘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언어적으로 매력적인 것도 있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종국의 꿈은 한글을 나만의 방식으로 세계화 시키는 것이다."
- 한글의 세계화, 좋은 목표인 것 같다.
"결국 내 브랜드나 비즈니스의 지향점이 되지 않을까. 외국 분들이 내 SNS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고. 외국 친구들이 디자인이나 표현 방식이 매력적이라는 피드백도 많이 주고. BTS와 기생충을 만든 한국 문화의 DNA도 믿는 편이다. (웃음) 아무튼 꿈을 원대하게 가지고 있다. "
- 사업을 잘 할 것 같나? 올 해의 비즈니스를 하는 기준은?
"할 것 같다. 추진력이 굉장한 편이고.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비즈니스는 의미가 있으면 한다. 돈이 되건 안 되건.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도 경계가 없다."
- 무경계의 경험, 큰 무기가 될 거 같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과 경계 없는 작업을 하며 다양한 매체들을 만나고 싶다."
<일을 대하는 이윤채의 시선>
- 인간 이윤채는 어떤 사람인가?
"꾸준한 사람이다. 다양한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 시도와 노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 기웃거리는 사람. 가만히 못 있는 사람. 그렇게 해야 살아있다고 느낀다."
- 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을 한다는 고민은 쭉 이어져오는 것 같다. 왜 사람들은 한 가지 일만 하게 될까. 버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게 어려워서가 아닐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에 대한 보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 같다."
- 어렸을 때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나?
"음악을 오래 했으니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줄 알았다. 잠시 외교관을 꿈꾼 적도 있었고. 어렸을 때 영국 여행을 가서 나름 충격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이런 큰 나라에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그런 감정들이 이어져 오는 것 같다."
-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결국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미 늦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은 한번 해보고 싶다. 웃기지만 뮤지컬 배우도 해보고 싶고. 노래를 엄청 잘 하는 건 아닌데 음악에 대한 애정은 늘 꾸준히 있었다."
- 일로서의 궁극적 꿈은 무엇일까?
"결국 내 가치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
<이윤채의 삶과 미래에 관하여>
- 최근 가장 영향은 받은 책이나 작품이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좋아한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영감도 많이 받았고."
- 나의 직업들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게임 회사를 다니니 주기적으로 게임 영상을 많이 본다. 아카이빙도 해두는 편이고. 영상을 보며 소비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한다. 디자인 적으로는 영화나 핀터레스트를 많이 보지만, 사람 관찰하는 것들이 큰 도움이 된다."
- 인간 이윤채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전해져오는 느낌이 좋은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사람.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 뭔가를 하고 싶지만 아직은 못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기웃거렸으면 좋겠다. 기웃거리다보면 뭔가가 보일테고. 대단한걸 시작하지 말고 꾸준히 작게 묵묵히 하다보면 갑자기 올라올 것이다. 나 역시 필사로 시작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결국 끈기와 지속성의 문제다."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원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