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슈퍼전파지' 된 콜센터...재택근무 100% 도입 왜 안 될까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120 경기도 콜센터에서 관계자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소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화 받고 안내만 하면 되는데 재택근무 왜 못하나. 콜센터 인력 모두 재택근무 시켜라.”

“감염 위험 높은데 왜 재택근무 안 시키나. 수도권까지 대구처럼 심각해지면 정부랑 금융사들 책임져라.”

서울 구로의 에이스손해보험 위탁 콜센터에 이어 대구 소재 DB손해보험과 신한카드 콜센터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다. 비말(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튀는 작은 침방울) 감염 위험이 높은 근무여건 상 콜센터 인력들을 재택근무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금융사들의 속앓이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금융 당국이 원격근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긴 했지만 무턱대고 재택근무를 도입했다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어서다. 게다가 상당수 금융사들은 재택근무에 적합한 전산 시스템이나 가상PC 등의 기본 장비조차 갖추지 못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권 콜센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유관기관 회의를 열고 유관 협회를 통해 사업장 밀집도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각 협회는 한자리씩 띄어 앉기 등을 통해 상담사간 거리를 최대한 늘리고 필요할 경우 상담원 3교대 근무, 분산근무, 재택근무 등을 통해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중 쟁점은 콜센터 인력들에 대해 전면 재택근무를 도입할 수 있느냐 여부다.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회사·전자금융업자는 내부 통신망과 연결된 내부 업무용 시스템을 외부 통신망과 분리하도록 규정했다. 2011년 농협 등 금융권의 전산망 마비 사태에 따른 후속조치로 생긴 이른바 ‘망 분리 규정’이다. 외부에서 금융사 내부 통신망에 접속할 경우 중대한 보안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위는 지난달 한국씨티은행이 질의한 원격근무 가능 여부에 대해 ‘비조치의견서’ 회신을 통해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재택근무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비조치의견이란 현행 규정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나 예외적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로 ‘망 분리 규정’을 일시적으로 풀어 재택근무시 일반 임직원도 외부에서 금융사 내부 통신망에 접속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 이후에도 대부분의 금융사는 고객의 개인 정보에 접근하는 직군을 제외한 인력들에 한해서만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고객 정보 유출 사고가 터질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어서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재택근무 중 내부망 접속을 허용하려면 자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망분리를 대체할 정보보호통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이 모든 사항을 정보보호위원회 승인까지 별도로 받아야하는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이유로 DB손해보험의 경우 콜센터에서 처리했던 업무를 자택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재택업무 비즈니스 모델(Home-Based Business Model)’을 10년 전에 개발하고 특허 등록까지 마쳤지만 사실상 활용하지 못했다. 개발 직후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등이 잇따르면서 업무 도입이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확산 직후 DB손보는 유사시 재택업무 비즈니스 모델을 전면 도입하기 위해 파일럿 테스트까지 마쳤지만 지금도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콜센터 업무를 콜센터 전용 사무실이 아닌 자택에서 처리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높아지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한 대형은행 콜센터 위탁사의 관리부장인 B씨는 “콜센터 직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에 보안 테이프를 부착해야 하고 직원들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유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며 “재택근무로 전환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형 보험사의 지방 소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정 모 씨는 “가상화 PC는 인터넷도 할 수 없고 바쁜 업무에 화면을 촬영하거나 수기로 개인정보를 옮겨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정보보호부서에서 실시간으로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모니터링하는데도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건 관리감독의 편의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DB손보의 경우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경우다. 대다수 금융사들은 망 분리 규정 탓에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나 장비조차 갖출 필요가 없었다. 이와 관련 한 금융사 관계자는 “재택근무 지원 시스템이 없는데 당국에서 재택근무 확대를 지시하면 사실상 무급휴가를 쓰게 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사로선 업무 공백이 커지는 만큼 개인 연차 휴가를 소진하도록 하면 논란의 소지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대체사업장을 마련하고 분산·교대·유연근무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카드와 한화생명, 현대해상 등은 콜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대근무를 도입하는가 하면 전체 직원의 3분의 2만 근무하게 해 좌석을 교차로 배치하는 식으로 최대한 거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또 라이나생명은 다음 주부터 교대근무를 도입하는 한편 음식점 등에서 사용하는 투명위생 마스크를 지급해 업무 시 착용하도록 했다. 이밖에 삼성화재, 삼성생명, 현대카드는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해 출퇴근 시간을 분산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