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1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와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권고했다. 삼성 측에는 30일 안에 답을 내놓을 것을 요청했다. 앞서 준법감시위는 지난달 삼성이 7년 전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삼성은 즉각 공식 사과했다.
재계에서는 준법감시위의 거듭된 과거사 사과 요구를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준법감시위가 당초 설립 취지인 위법 행위의 사전적 예방보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지형 준법감시위원장은 1월 초 간담회에서 “(삼성의) 과거 행위까지 다룰 것인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다만 위원회 설립 이후의 사항을 중심으로 다루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는 또 지난달 첫 회의에서 삼성의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무 위반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준법감시위의 권고에서 과거 문제에 대한 사과 외에 당초 집중 감시하겠다는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다.
준법감시위의 사과 권고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에게 사과를 권고한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는 현재 법원의 재판과 검찰 수사 등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했고 현재 파기환송심이 열리고 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삼성물산 합병 의혹을 수사하며 경영권 승계와의 연관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와 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사과부터 하라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재판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비난을 의식해 삼성의 과거 행위를 문제 삼으며 성과를 보여주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준법감시위가 시민단체의 비난에 특히 민감해한다는 말들도 나온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준법감시위에 대해 ‘법경유착’의 우려가 있다며 위원회 해체와 위원들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경실련은 또 준법감시위에 참여한 김지형 전 대법관 등을 대한변호사협회가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삼성 준법감시위원인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냈다.
준법감시위의 의도를 떠나 삼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미래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 과거의 일들에 발목이 잡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경쟁업체인 애플·소니·화웨이 등이 모두 미래를 향해 뛰는데 여전히 ‘적폐청산’ 논란 속에 과거와 씨름해야 하는 삼성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