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충격 잠재우려 전격 '빅컷'…실물경기 침체에 효과 미지수

해외자본 유출 우려 적다고 판단
임시 금통위서 역대 세번째 인하
RP 매입·양적완화도 병행할 듯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사진제공=한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내리면서 사상 첫 기준금리 ‘0% 시대’가 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전격 인하한 직후인 16일 한은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0.50%포인트 금리를 인하해 ‘빅 컷’을 단행했다.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주요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 인하 대응에 나서면서 한은이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시장에 유동성이 이미 풍부한데다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있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이날 한은은 임시 금통위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인하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이례적으로 이주열 한은 총재를 불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위기 대책을 논의한 지 3일 만이다.

당초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연준이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를 열어 금리를 결정하는 18~19일 임시 금통위가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연준이 지난주 0.50%포인트 인하에 이어 15일에도 긴급회의를 열어 금리를 1.00%포인트 대폭 인하하고 문 대통령의 전례 없는 대책 주문 등으로 한은의 대응시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0.2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한은이 금리를 0.50%포인트 내린 것은 정책 불확실성으로 요동치는 금융시장의 공포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연일 이탈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며 “0.25%포인트 소폭 인하할 경우 금융시장에 실망감을 주면서 매도세가 가팔라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파격적인 금리 인하도 한은이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는 여력을 제공했다. 4일 이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을 운용하면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등 국제 정책 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며 “미국의 금리 인하로 통화정책 운용의 폭이 다소 넓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1.25%로 미국과 금리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한은이 쉽게 금리를 내릴 수 없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로 한미 간 1.00%포인트 이상의 금리 차가 나면서 자본유출 우려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의 부작용 중 하나가 자본유출인데 미국과의 금리 차이로 자본유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은이 임시 금통위 회의를 열어 금리를 인하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총 세 번이다. 과거 한은은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렸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에 0.7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모두 0.50%포인트 이상의 ‘빅 컷’이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이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날 한은은 금리 인하와 함께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도 연 0.50~0.75%에서 연 0.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한은이 여수신 제도로 쓸 수 있는 대출정책은 자금조정·금융중개지원·일중당좌·특별대출 등 크게 네 가지다. 이 중 한도 범위 내에서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실적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이 민간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가장 효과가 크다. 지난달 금중대 한도를 3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한 데 이어 금리도 인하한 것이다. 금중대 금리는 정기 금통위 회의를 열지 않고도 기준금리와 별개로 조정할 수 있지만 금통위 위원들의 의결사항이다. 마지막 금중대 금리 인하는 2015년 3월이었다.

또 유동성을 충분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개시장운영 대상 증권에 은행채까지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이 총재는 10일 “대출정책·공개시장운영 등 정책수단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언급했다. 한은 금통위도 12일 대출적격담보증권 범위를 오는 4월부터 확대하기로 하고 증권금융·증권사 등 비(非)은행 대상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한은은 금리 인하와 함께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단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들여 16조8,000억원을 공급했다. 또 국고채를 매입하고 통화안정증권을 중도 환매해 1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중소기업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총액한도대출(현 금융중개지원대출) 규모를 증액하는 방식으로 3조5,000억원을 풀었다.

다만 이번 한은의 금리 인하가 시장의 불안심리를 다소 잠재울 수 있지만 가계대출 증가세와 주택 가격 상승세로 인한 금융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먼저 금리를 내린 상황이어서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나 외국인 자금 이탈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부동산 투기가 완전히 잡혔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 경제주체들이 저금리로 과도한 대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예금 금리가 낮아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부동산 규제가 덜한 지역으로 몰려 수도권 외 부동산시장이 더욱 과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철·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