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광은 고구려가 멸망하기 2년 전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됐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고국이 멸망하자 약광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약광과 그의 후손들은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1,700여명의 유민들을 모아 716년에 고마군(高麗郡)을 창설했다. ‘고려’는 일본에서 ‘고마’로 읽힌다. 고마군은 지금은 사이타마현의 히다카시(日高市)로 불리지만 1896년 이웃한 이루마군에 병합되기 전까지 유지됐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고마산·고마천·고마역·고마소학교 등 ‘고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명칭들이 수두룩하다. 고려라는 말이 쓰인 것은 5세기 무렵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고구려를 고려로 적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이들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했다.
고구려 유민들의 일본 정착사를 살펴보는 답사가 올해 4월26~29일 진행된다. 사이타마현 고마신사에서 초기 거주지였던 가나가와현 다카쿠(高來)신사까지 100㎞를 걷는 ‘고려왕 약광 워크’다. 일본은 기원 전후 즈음부터 한반도에서 격변이 있을 때마다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는 얘기가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도래인이라고 부른다. 고조선 시절부터 가야·백제는 물론 임진왜란·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사람이 건너갔다. 문화인류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균·쇠’에서 일본인의 한반도 기원설을 설파했다. 한국과 일본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 등으로 아픈 역사가 뼈에 사무쳐 있지만 이제는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