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1961년작 ‘4월의 행진’ /사진제공=서울옥션
그래도 봄은 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적 접촉이 ‘잠시 멈춤’ 상태다 보니 코끝 간지럽히는 상춘의 유혹이 더 애달프다. 사람과 자연이 그리운 마음을 그림이 위로한다. 오는 24일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 25일 케이옥션 사옥에서 열리는 경매에는 손 맞잡은 사람의 힘, 봄 부르는 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거 선보였다. 서울옥션은 127점, 케이옥션은 175점씩 각각 총액 100억원 어치의 작품을 경매에 올린다.
이응노 ‘군상’ /사진제공=서울옥션
◇손잡은 사람의 힘= 서울옥션은 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만 ‘사람과 사람 그리고 타자’라는 제목으로 따로 모았다. 가장 주목할 작품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가 1961년에 그린 ‘4월의 행진’(추정가 7억~10억원)이다. 김환기 특유의 푸른색으로 표현된 사람의 형상은 추상적이고, 서로 어깨를 걸고 거대한 띠를 이룬 군중은 화면 밖까지 확장될 듯하다. 김환기는 4·19혁명 직후인 1960년 잡지 ‘사상계’ 6월호에 삽화 형태로 ‘4월의 행진’을 처음 그린 후, 1년 뒤 4월에 유화로 다시 그렸다. 시대적 요소를 함축했지만 사실적 묘사 대신 과감한 선(線)의 은유를 택했다. 김환기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소재에 역사성도 담고 있다.
동양화로 그림을 시작해 프랑스에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이응노의 ‘군상’(1,000만~2,000만원)은 작고 2년 전에 한지로 제작한 콜라주 작품이다. 춤추는 듯한 몸짓의 사람들이 군중의 힘을 보여준다. 산정 서세옥의 ‘사람들’(2,200만~3,500만원)은 손에 손잡고 둥글게 어우러진 군상이다. 서정적 추상 풍경의 화가 윤중식의 ‘곡예사’(7,800만~9,000만원)는 사람들의 둥근 얼굴과 곡예사가 굴리는 바퀴가 율동감을 이룬다. 민중문화에 관심 많았던 판화가 오윤의 ‘춘무인추무의’(2,500만~5,000만원)는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뜻으로, 풍물패와 이를 따르는 무리의 덩실거리는 몸짓이 흥겨우나 애잔하다.
윤중식 ‘곡예사’ /사진제공=서울옥션
오윤 ‘춘무인 추무의’ /사진제공=서울옥션
모란괴석도 /사진제공=케이옥션
베르나르 뷔페 ‘파란색과 하얀색 꽃병 속의 백일홍’ /사진제공=케이옥션
◇꽃보다 그림=케이옥션이 내놓은 베르나르 뷔페의 ‘파란색과 하얀색 꽃병 속의 백일홍’(1억~2억원)은 주황과 노랑이 어우러진 화사한 꽃과 사방으로 뻗어가는 줄기에 뷔페 특유의 과감한 선묘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뷔페는 피카소·샤갈·미로 등과 함께 20세기 화단을 이끈 대표 작가다. 한껏 피어오른 야생화가 생명력을 과시하는 김종학의 100호 크기 ’녹음방초’(1억8,000만~3억원)를 비롯해 ‘백화만발’(1,700만~2,500만원), ‘설악풍경’(2,500만~5,000만원)도 케이옥션 경매에 오른다.
천경자의 ‘백일’(3억2,000만~5억5,000만원)은 화가와 동갑내기인 마릴린 먼로를 중앙에 그리고 등나무꽃과 나비들을 주변에 배치해 호접몽처럼 화려했으나 덧없는 삶을 묘사했다. 김홍주의 ‘무제’(7,300만~1억3,000만원)는 머리카락처럼 얇은 세필로 그린 분홍색의 꽃 그 자체다. 탐스러운 황염수 ‘장미’(3,500만~5,000만원), 언제봐도 마음을 느긋하게 풀어주는 이대원의 ‘농원’(6,000만~1억원)과 ‘낙화암’(6,700만~1억원) 등은 눈 호강의 기회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8폭짜리 ‘모란괴석도’로 시작가 4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화왕(花王)이라 불린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해 조선의 왕실행사 때는 항상 모란병풍이 놓였는데, 이 전통이 민가에까지 전해져 자유롭고 다채로운 구성의 민화 모란도가 유행했다.
김종학 ‘녹음방초’ /사진제공=케이옥션
김홍주 ‘무제’ /사진제공=케이옥션
천경자 ‘백일’ /사진제공=케이옥션
◇VR관람과 사전예약제=코로나19는 경매장 풍경도 바꿔 놓았다. 케이옥션은 홈페이지를 통해 “경매 프리뷰는 사전예약한 고객에 한해 관람이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원래는 무료로 누구나 언제든 관람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이며 전시장 안에서도 “타인과의 사회적 거리 유지에 신경 써 주시길” 당부했다. 당일 관람 예약도 가능하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당일 좌석도 한두 자리 건너 한 명씩 앉을 수 있게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옥션은 외출을 꺼리는 관람객을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로 볼 수 있는 ‘VR 프리뷰’를 강화했다. 홈페이지에서 ‘전시장보기’를 클릭하면 전시장에 입장해 실제 공간에 걸린 출품작 구성을 볼 수 있고, 정면의 확대한 이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