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의 큰손인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중앙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불거진 금리 변동성과 기업들의 펀더멘털 우려가 커지자 활발히 지갑을 열던 기관투자가들이 시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들이 줄줄이 투자수요 확보에 실패했다. BBB등급인 키움캐피탈부터 정부 정책 사업자로 안정성이 보장된 포스파워(AA-), 초우량채로 평가받는 하나은행(AA)의 후순위채까지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다만 하나은행은 추가청약을 통해 8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3,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투자자들의 회사채 선호도를 가늠할 수 있는 신용스프레드도 지난 201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부채위기 이후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3년 만기 ‘AA-’ 등급의 회사채 금리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를 뺀 신용스프레드는 0.715%포인트까지 급등했다. 투자자들이 안전한 국고채 투자를 늘리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위험한 회사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의미다.
채권유통 시장도 함께 얼어붙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유통시장에서 약 19조억원을 웃돌던 회사채 거래량은 이날 기준 7조원으로 급감했다.
이 같은 현상은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을 한 이후 심화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와 함께 교역 및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신용 위험이 부각된 탓이다. 급격한 금리 변동성도 영향을 미쳤다. 위험자산(신흥국) 회피 심리에 따른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13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8.7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변동성이 커지자 연초 회사채를 쓸어담던 기관투자가들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일부 기관에서는 기존에 보유하던 사채들마저 헐값에 내다 파는 ‘패닉셀’도 속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리스크 관리를 위해 현금 보유를 늘리는 편을 택한 것이다.
시가평가에 따른 부담도 있다.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져 펀드 수익률을 깎아 먹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투자자들의 환매가 잇따를 우려도 있어 일부 수익성이 크게 나는 채권을 남기고 현금화했다”며 “변동성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당분간 신규 편입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집행하기 어려운 연기금과 중앙회도 비슷한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자금조달 전략을 속속 변경하고 있다. 최근 대우건설(047040)은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연기했다. 7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 한진칼(180640)도 시장성 자금조달 없이 보유현금으로 상환했다. 한솔테크닉스와 신세계(004170)·하이트진로(000080) 등도 차환 발행 규모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채 신용스프레드의 경우 시장의 이벤트가 발생한 뒤 나타나는 후행지표라는 분석에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검토를 위한 기업의 재무자료와 채권의 시가평가 등이 현재 상황을 즉각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시장 변동성이 지금에서야 회사채 시장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다음달까지는 투심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