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글을 쓰고, 식사 뒤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식사를 마치면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 드 플로르는 우리 집과 같은 곳이다.”
프랑스 문단의 거장이자 실존주의 대표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파리 생제르맹의 한 카페에서 살다시피 했다. 카페 주인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놓고 열두 시간을 버티는 괴력을 보여준, 가장 지독한 손님”이라고 칭했다. 사르트르는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이 카페의 테라스에서 오후의 따스한 햇볕을 느끼며 문학과 철학을 얘기하고 로맨스를 꿈꿨다.
카페 드 플로르는 ‘레 되 마고’와 함께 파리 문학 카페의 양대 산맥이다. 1881년 카페 앞 꽃의 여신상 ‘플로라’에서 이름을 따 세워진 뒤 20세기 지성과 문화의 산실이 됐다. 소설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와 미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당대 작가들이 여기서 집필을 구상했고 앙드레 말로는 자리를 지정해놓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카페 측은 이들의 혼을 잇기 위해 ‘플로르상’이라는 이름의 문학상을 주최해 신예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카페 드 플로르는 파블로 피카소 등 화가들의 사교 모임장이 되기도 했다. 특히 난방시설을 잘 갖춘 뒤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의 단골이었는데 새 난방 장치에 반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1940년대에는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카페는 연예계 스타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탕, 알랭 들롱, 브리지트 바르도 등이 이 카페의 테라스를 좋아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많이 찾았다. 중국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도 파리 유학 시절 자주 들렀다.
지성인들의 휴식 공간인 카페 드 플로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폭풍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프랑스 정부가 국민의 이동 금지령과 함께 필수적이지 않은 상점들을 당분간 폐쇄하기로 하면서 유명 카페들의 영업도 막힌 것이다.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진정돼 이곳이 예술가들이 꽃을 피우는 요람 역할을 다시 했으면 한다. /김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