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최초의 고급 상점가 등장

1819년 벌링턴 아케이드 오픈

벌링턴 아케이드.

1819년 3월20일 영국 런던 중심가에 이색 건물 벌링턴 아케이드(Burlington Arcade·그림)가 들어섰다. 건축가 새뮤얼 웨어는 길이 179m인 신축 이층 건물의 중앙을 통로로 남겨두고 지붕에 유리를 올렸다. 건물의 용도는 시장. 고객들은 자연채광이 뛰어난 중앙통로를 걸으며 쇼핑을 즐겼다. ‘세계 최초의 아케이드’라는 벌링턴 아케이드를 지은 데번셔 백작 윌리엄 캐번디시는 점포를 세놓으며 조건을 걸었다. ‘일류상품만을 판매하고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양복점 등 72개 점포가 문을 열었다.


데번셔 백작이 입주 조건을 따진 이유는 ‘차별화·고급화 전략’이 아니라 일종의 장벽 건설. 가문이 소유한 벌링턴 하우스에 딸린 정원에 모여드는 ‘부랑자’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할 의도였다. 건축가는 머리를 싸맸다. 건축주의 요구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정원에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아무 데서나 술 먹고 쓰러져 자는 부류들의 접근을 막되 캐번디시 가문의 명성에 걸맞은 고급 건물이어야 하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도 안 됨.’ 결국 건축주의 요구는 기차처럼 길고 가느다란 2층짜리 석조 건물로 나왔다.

밑바닥 계층을 막기 위해 고객들이 받았던 제한도 있다. 워털루 전투 참전병 출신인 ‘비들(일종의 청원경찰)’은 휘파람을 부는 손님을 내쫓았다. 일종의 차단막으로 시작된 벌링턴 아케이드는 빅토리아 시대 호경기와 맞물리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고급 상가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도로 맞은편에 피카디리 아케이드까지 생겼다. 고급 아케이드 열풍은 해외까지 퍼졌다. 20세기 이후 주종은 보석류. 지난 1964년 복면강도들이 20억원어치 보석을 털고도 잡히지 않은 영구미제 사건 발생 후에는 보석류 상점이 오히려 더 들어섰다.

힘들었던 시기도 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가 최악. 전쟁과 화재, 손 바뀜 등으로 상가의 통일성이 사라져 고객이 줄어드는데도 임대료는 크게 오른 탓이다. 견디다 못한 임대상인들이 떠나며 공실까지 생겼다. 인근의 신설 고급 상가와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벌링턴 아케이드를 되살린 것은 대규모 투자. 미국계 자본이 들어와 상가 전체의 내부 인테리어를 19세기풍으로 바꾸며 과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비싼 임대료를 내는 상점이 최고가 상품을 파는 벌링턴 아케이드 부근에는 가장 싼 임대료를 내는 최고의 학술단체도 있다. 차단벽을 세워 지키려고 했던 벌링턴 하우스에 세를 든 왕립학회(Royal Academy)의 임대료는 999년간 1파운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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