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이해찬 대표의 원죄

김상용 정치부 차장


“저에 대한 공천 배제 발표는 이유와 근거가 없습니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합니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2016년 3월15일 이해찬 당시 전 총리는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자신의 세종 지역구 공천 배제 결정에 울분을 토하며 김 전 대표를 향한 말을 쏟아냈다. 이 전 총리는 18대 총선(2008년)에는 불출마했지만 19대 총선(2012년)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세종에 출마해 6선에 성공한 터였다. 7선 도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 공천에서 배제되자 “부당한 것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저 이해찬은 불의에 타협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말한 후 탈당, 무소속 출마에 나서 7선 고지를 밟는다.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탈당까지 감행한 전력이 있는 이해찬 의원은 당선한 후 민주당에 복귀해 보란 듯이 당 대표에 올랐다.


민주당의 수장 자리에 오른 이 대표는 그러나 뜻밖의 암초를 마주했다. 일부 현역 의원과 예비 후보들이 경선도 치르지 못한 채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천을 받지 못한 예비 후보와 현역의원들은 이 대표가 밟아온 궤적 그대로 탈당한 후 무소속 출마로 입장을 선회하고 당선 이후 다시 민주당으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가 4년 전 밟은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반응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 대표는 “공천을 받지 못해 출마할 경우에는 영구 제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규에 (영구제명에 대한 조항이) 없다면 보완할 것”이라고 이 대표의 엄포가 ‘공갈’이 아님을 거들었다.

이 경고를 받아들인 현역 의원과 예비 후보들의 반응도 역시나 명쾌했다. 무소속 출마 강행 예정인 한 의원은 “최소한 그 말만큼은 이 대표가 할 말이 아니다”라면서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이 대표가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배역을 맡다 보니 자신이 소화하지 못할 대사를 남발하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본인(이해찬 대표)은 공천 배제에 불만을 품고 탈당한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당선과 함께 복당한 상황에서 자신의 흔적을 뒤쫓는 정치후배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차라리 “무소속 출마 후 복당이라는 원죄를 가진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앞으로 회자될 한국 정치사의 한 대목이다.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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