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체임벌린(왼쪽) 영국 수상과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이 1938년 9월 뮌헨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체임벌린 수상은 이날 만남에서 상대의 전쟁 야욕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사진=위키피디아
1938년 9월 영국 수상 네빌 체임벌린은 뮌헨으로 날아갔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한번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둘은 웃는 얼굴로 악수한 후 통역 한 명만을 대동한 채 꽤 오랫동안 의견을 나눴다. 체임벌린은 다음 날 런던으로 돌아와 헤스턴 공항 활주로 위에서 기분 좋게 짧은 연설을 했다. “어제 히틀러와 장시간 대화를 했습니다. 서로 심중에 있는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의 연설을 들은 관중은 유럽이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환호했다.
하지만 역사는 체임벌린이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했음을 입증했다. 체임벌린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확인했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잇달아 짓밟으며 유럽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훨씬 쉬울 것이라던 체임벌린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역사에 남을 치명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의도나 생각을 잘못 읽는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한다. 누구보다 예리한 안목을 가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판사나 경찰, 투자 전문가, 최정예 정보 요원도 예외는 아니다. ‘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저자 말콤 그래드웰은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에 대해 물음표를 품고 접근한다. 왜 우리는 번번이 타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는가.
글래드웰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타인의 해석’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건과 다양한 학문적 연구결과를 지그재그로 오가며 타인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여러 오류를 조목조목 따진다. 그리고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원인을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서성일 수 밖에 없는 인간 본성에서 찾아낸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사건을 저지른 버나드 매도프가 지난 2009년 3월 12일 뉴욕 맨해튼 연방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월가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믿어버리는 뼈아픈 실수를 했다./AFP연합뉴스
■펜타곤에서 잘 나간 쿠바 스파이
글래드웰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에 대한 판단 오류를 쉽게 범하게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이 정직할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가정한다는 이른바 ‘진실 기본값 이론’이다. 물론 거짓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 이도 있지만, 이들은 소수일 뿐이다.
펜타곤에서 쿠바의 이중첩자가 버젓이 활동하는데도 동료들이 그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버나드 매도프가 벌인 역대 최악의 폰지 사기극에 월가의 내로라 하는 투자 전문가들이 줄줄이 속아 넘어간 데는 의심보다 믿음으로 기우는 인간의 본성이 작용했다.
룸메이트 살해 혐의로 체포됐던 미국 대학생 아만다 녹스가 2011년 10월 3일 페루자 법원에서 열린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녹스의 서툰 감정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범이라고 생각하게 했다./EPA연합뉴스
■매도프가 그럴 줄 몰랐다?
많은 이들이 타인의 태도가 그의 내면과 늘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점도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늘 자신감에 차 있고 반듯한 매도프의 모습에 투자자들은 그의 겉모습과 내면이 일치할 것이라 여겼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너무나 평범한 겉모습 때문에 마음 속 광기를 눈치채는 데 실패했다. 저자는 이를 ‘투명성 관념에 대한 맹신’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인 여대생 아만다 녹스는 이탈리아에서 룸메이트 살해 용의자로 체포됐다거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가 살인자로 몰린 이유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해가 발생하는 마지막 이유는 타인을 판단할 때 사건과 배경, 상황 등의 결합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맥락의 중요성을 간과한 탓에 상대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게 된다. 저자는 퓰리처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일산화탄소 중독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그 근거 사례로 든다. 천재 시인이 자살을 택한 데는 그 자신의 우울증과 개인적 불행 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보급이라는 사회적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대화, 겸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 하나. 독자들은 이 책에 대해서도 ‘투명성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책은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원제목이 ‘Talking to Strangers’ 인 이 책은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나 ‘타인에게 말을 거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타인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다. 1만8,5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