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올해 루트비히 반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축제를 준비 중이었다. 베토벤의 인생과 작품을 조명하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예고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공연들은 줄줄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오는 4월 베토벤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었던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의 첫 내한 연주회도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베토벤의 음악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귀가 먼 상태에서도 대곡들을 작곡해낸 베토벤을 통해 힘을 얻고 희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쳐있는 이들을 위한 베토벤 명곡들을 클래식 음악칼럼니스트와 아티스트들에게 추천받았다.
최근 책 ‘베토벤’을 출간한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특히 4악장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에 매우 좋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를 배려하고 한마음이 되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같은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곡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An die Freude)’에 곡을 붙인 4악장은 처음에는 매우 시끄러운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 음악은 마치 여러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때 오케스트라의 첼로와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오, 친구여! 이런 음악이 아닙니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음악을 노래합시다!” 그래도 다시 한 차례 시끄러운 음악이 반복되지만 어디선가 고요하게 ‘환희의 송가’ 선율이 연주되기 시작하고 그 소리는 점차 커진다. 그리고 독창자들과 합창이 가세해 큰 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의 아늑한 날개가 있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 베토벤의 제자가 1악장 서두의 주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로써 베토벤 교향곡 5번에는 ‘운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는 베토벤이 직접 지은 제목은 아니며, 한국과 일본에서만 ‘운명’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곡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가 느낄 수 있는 만큼 ‘운명’이라는 별칭이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린다. 이 곡을 추천한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는 “베토벤의 모토인 ‘암흑에서 광명으로’, ‘투쟁으로부터 승리로’ 나아가는 고난과 극복의 모습이 먹구름 낀 날씨와 화창한 날 청명한 대기처럼 뚜렷하다”며 “고난으로 시작돼 찬란한 빛으로 마무리하는 베토벤의 최고 명곡을 들으면 마음을 씻어내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하루 종일 쓰고 있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 답이 될 수 있다. 트럼펫 연주자이자 클래식 해설가로 활동 중인 나웅준은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1악장을 추천했다. 자연을 뜻하는 ‘전원’이라는 이름답게 이 곡을 통해 베토벤이 가슴으로 느낀 자연의 상쾌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2번(Op.127)’ 중 2악장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곡은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말년에 작곡한 곡이다. 대니 구는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안 들리게 된 말년으로 갈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곡을 썼다”며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힘을 내자’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느린 악장이지만 현악기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소개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