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20년만에 강북 리턴...다시 불붙는 로펌 입지전쟁

김앤장·광장·세종 등 강북에 본사
"고객사 밀집...적극적 스킨십 가능"
율촌·화우 "경제 중심지는 강남"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로펌) 중 한 곳인 태평양이 지난 16일 서울 강남을 떠나 종로구 종각역 인근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강북·강남에 각각 본거지를 둔 로펌 간 경쟁구도가 주목을 끈다. 태평양의 사무실 이전으로 길게는 20여년간 이어져 온 로펌 업계의 강북 대 강남 구도가 달라진 덕분이다. 김앤장·광장·세종 등 강북에 본거지를 둔 대표적 로펌들은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할 고객 업체들이 가까이 있어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반면 율촌·화우 등 출범 당시부터 강남을 고수해 온 로펌들은 각종 비즈니스의 중심이 여전히 강남권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터전을 옮길 생각이 없다고 강조한다.

23일 로펌 업계 안팎의 설명을 종합하면 태평양은 지난 1998년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하며 로펌의 강남 시대를 재촉했던 곳이라 이번 이전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태평양은 “이번 본사 이전을 통해 서울시청-광화문-종각을 잇는 업무 트라이앵글 중심 축이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대표변호사는 “새로운 터전에서 더욱 스마트하게 체질을 변화해 글로벌 최고의 로펌으로 비상하는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주요 대형 로펌 4곳이 광화문 일대에서 서로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 강북 로펌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김앤장의 경우 광화문 세양빌딩·적선현대빌딩·노스게이트빌딩·센터포인트빌딩·정동빌딩에 분산해 위치해 있다. 최근에는 대우건설 빌딩의 일부 층을 새로 임차해 파트너 변호사들의 사무실을 추가로 마련하기도 했다. 세종은 1983년 출범하며 종로 교보빌딩에 본거지를 두다 작년 2월 광화문사거리 인근 디타워에 입주했다. 광장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중구 한진빌딩을 고수하고 있다.

강북에 위치한 로펌들은 고객사와의 지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들 로펌은 송무 등 민형사상 소송 관련 업무 외에도 기업 및 주요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 투자 등 주요 활동의 자문 및 컨설팅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 굳이 법원, 검찰청 근처에 본사를 둘 매력이 적다는 얘기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광화문 일대는 대기업·금융기관·외국계기업·정부기관이 밀집해 있어 고객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에 좋은 조건”이라며 “김앤장이 광화문 근처에 사무실을 새로 만든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남에 본사를 둔 로펌으로는 율촌과 화우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율촌의 경우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1997년 삼성역 근처 섬유센터에 자리잡으며 테헤란로 일대에 가장 먼저 사무소를 마련한 로펌으로 꼽힌다. 지금은 삼성역 파르나스타워에 있다. 율촌은 성장사를 소개한 ‘율촌20년’을 통해 “변호사 사무실은 법원이나 검찰청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발상을 전환해 현재 비즈니스가 왕성하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 즉 고객이 찾기 쉬운 장소로 정하기로 했다”며 “미국 로펌들의 위치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들 로펌은 문을 열 때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강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 내 주요 기업활동 비롯한 경제의 중심이 강남인데 굳이 옮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걸로 안다”며 “강북 등에 있는 대기업·금융사 등 거래처와도 유무선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기에 지리적 거리는 큰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