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공사도급 계약과 관련해 체결되는 계약이행보증보험계약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 다음, 이를 보험계약자에게 구상청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상금 청구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보험자의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적법했는지 여부인데, 그 과정에서 보험금 지급의 형식적 요건(보험기간 내에 발생한 보험사고인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절차적 사항들을 준수하였는지 등)과 실질적 요건(보험사고가 실제로 발생하였는지 여부) 등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보험계약자가 회생절차개시신청 등 사업경영상 중대한 사태가 발생해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자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자에게 보험사고 발생을 이유로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 보험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까? 통상적으로 공사도급계약에서 피보험자(도급인)와 보험계약자(수급인) 간에 체결된 계약일반조건 및 계약특약조건에서는 보험계약자(수급인)에게 부도, 폐업, 회생절차개시신청 등 사업경영상 중대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피보험자(도급인)는 보험계약자(수급인)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또 보험계약자(수급인)의 계약보증금은 피보험자에게 귀속된다는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보험계약자(수급인)가 공사기간 중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할 경우 피보험자(도급인)로서는 위와 같은 조항에 근거해 보험계약자(수급인)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청구하고자 할 것이다.
필자가 보험계약자를 대리해 수행한 사건은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자의 회생 절차 개시신청을 이유로 도급계약을 해지한 사안이었다. 이후 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청구해 이를 수령했고, 이에 보험자가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1·2심 모두 피보험자와 보험계약자 간의 공사도급계약상 보험계약자의 회생신청도 채무불이행의 한 유형으로 규정했다. 이 같은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계약보증금을 피보험자(도급인)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이라고 보고 보험자의 구상금 청구를 인용했다. 이에 필자는 ‘보험사고’의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위 1·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공사도급계약과 관련해 체결되는 이행보증보험계약에서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수급인의 계약상 채무불이행이 있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의 대상으로 약정된 도급공사의 공사금액, 기간 등을 기준으로 판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수급인이 계약기간 중에 회생 절차 개시신청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당해 계약의 이행이 그의 귀책사유로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회생 절차 개시신청 전후의 계약의 이행 정도, 회생 절차 개시신청에 이르게 된 원인, 회생 절차 개시신청 후의 영업의 계속 혹은 재개 여부, 당해 계약을 이행할 자금 사정 기타 여건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계약의 채무불이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원심이 보험계약자가 회생개시신청을 한 것만으로도 공사도급계약상 채무를 불이행한 것이어서 보험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한 것은 계약이행보증보험에서 보험사고의 발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하면서 필자의 위 상고이유를 그대로 인용했다. (대법원 2020. 2. 27. 선고 2018다275574 판결). 해당 판결은 종래 보험사고의 해석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계약이행보증금 관련 법적 분쟁에 있어 보험사고의 판단과 관련된 일응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